‘정치인 펀드’ 모집의 숨겨진 정치-경제학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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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층 확대 효과… 참여땐 자연스럽게 한배 타… 깨끗한 정치인 이미지 부각
투자 매력은 별로… 수익률, 정기예금이자 수준… 득표율 저조땐 ‘정크펀드’

정치 및 경제 전문가들은 ‘정치인 펀드’에는 단순히 선거비용을 마련하는 것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목적이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정치인펀드에는 자신의 태도와 행위 사이에서 심리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일관성 이론(consistency theory)’의 효과가 숨겨져 있다는 설명이다. 뚜렷하게 지지하는 후보가 없던 사람도 정치인펀드에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해당 정치인에게 투표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레임 효과’도 나타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국민께만 빚을 지겠다”며 정치인펀드를 모집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이장혁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문 후보의 말을 들은 유권자들은 정치인펀드를 조성하지 않는 후보는 ‘검은돈’으로 선거비용을 조달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투자상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치인펀드의 성격은 애매하다. 최근 200억 원을 모금한 문재인펀드는 투자자에게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기준으로 연 3.09%의 수익률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치인펀드는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어서 일반적인 펀드와는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금융투자 상품과 비교할 때 정치인펀드와 가장 비슷한 상품은 우량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이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정치인펀드가 미래의 현금 흐름을 담보로 발행하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과 유사하다고 본다. ABCP는 아파트를 지을 때 중도금이 계속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주로 발행하는 어음이다. 정치인펀드도 법정 선거비용이 들어올 것을 예상해 만든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인펀드에 대해 개인끼리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개인 간 금전거래’라고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

투자상품의 관점에서 정치인펀드는 매력이 떨어진다. 은행 예금 중 이자율이 높은 편인 KDB산업은행의 수시입출금식 통장은 연 3.25%나 된다. 문재인 후보가 제시한 정치인펀드의 수익률은 이보다 낮다. 하나은행의 김영호 프라이빗뱅킹(PB) 부장은 “득표율이 10%가 안 되면 정부에서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없고, 투자자들은 원금을 모두 날릴 수도 있어 리스크가 높은 상품이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정치인펀드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펀드 가입자가 시중 금리보다 낮은 이자율을 감수하며 후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에 대한 후원금과 달리 정치인펀드에 공무원과 교사 등이 참가할 수 있어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도 배제할 수 없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정치인펀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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