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 진로교육이 미래다]<4> 준비 안된 학생을 위한 진정한 대안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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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단 1명의 청소년도 포기하지 말라”

덴마크에서는 학교 교사가 진로 상담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진로지도센터 소속 진로상담가가 일주일에 하루 또는 이틀씩 학교에 상주하며 고민을 들어준다. 소르테담 초중등학교에서 진로상담가 모에 옌센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학생들과 면담하는 모습.
덴마크에서는 학교 교사가 진로 상담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진로지도센터 소속 진로상담가가 일주일에 하루 또는 이틀씩 학교에 상주하며 고민을 들어준다. 소르테담 초중등학교에서 진로상담가 모에 옌센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학생들과 면담하는 모습.
덴마크 코펜하겐의 소르테담 초중등학교 9학년인 아드리안 트레데 군은 최근 진로를 바꿨다. 내년에 졸업할 수 있지만 1년 더 다니기로 했다.

지난해 학습계획서를 쓸 때까지만 해도 이 학교를 나온 뒤에는 일반고에 갈 생각이었다. 최종 결정을 앞둔 지난달 10일 진로상담가인 모에 옌센 씨를 찾았다.

“원래 수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막연하게 일반고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대학에 진학해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요.”(트레데 군)

“친구들과 같은 시기에 무조건 상급학교에 진학할 필요는 없어. 1년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고교로 진학해도 된단다.”(옌센 씨)

○ 진로지도센터가 상담을 맡아

트레데 군은 상담을 마친 뒤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옌센 진로상담가는 8학년 때부터 진로 결정에 큰 도움을 줬다. 직업의 종류를 알려주고, 일반고와 직업고 학생을 데려와 이야기할 시간도 마련해줬다”고 말했다.

옌센 씨는 이 학교 교사가 아니다. 그는 코펜하겐 청소년진로지도센터 소속. 이 학교에는 일주일에 두 번(월, 금요일) 온다. 이 학교 8, 9학년 120명은 모두 옌센 씨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덴마크는 2004년 진로 업무를 전담하는 진로지도센터를 만들었다. 현재는 초중등학생을 위한 청소년진로지도센터가 52곳, 고등학생을 위한 지역진로지도센터가 7곳 있다.

진로상담가 1명이 2, 3개 학교를 맡아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씩 머문다. 학생은 언제든 진로상담가를 찾아가면 된다. 진로상담가는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수업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학교가 알아서 진로상담을 했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옌센 씨는 “교사는 수업을 해야 하므로 상담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또 학년이 올라가서 교사가 바뀌면 상담의 지속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진로 상담을 강화한 데에는 고교 졸업 비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 교육부의 요르겐 브로크 자문관은 “준비가 안 된 학생이 무조건 고교에 진학하면 중도 탈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고교 졸업 비율이 77.4% 정도지만 장기적으로는 95%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덴마크는 2010년 10월부터 새로운 고교 지원 시스템을 도입했다. 학생이 일반고에 진학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진로상담가가 평가하도록 했다. 평가는 개인 사회 학업 등 세 가지 관점에서 이뤄진다. 학생들은 이 평가서를 중학교 졸업 평점, 지원서와 함께 고교에 제출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매년 9만 명이 초중등학교를 졸업한다. 이 중 3000여 명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때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학부모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학생을 2년간 지켜본 진로상담가의 판단을 믿는다.

포 이슬란스 브뤼게 초중등학교의 진로상담가 토케 옌센 씨는 “부모는 자녀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지만 내게는 수많은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숙제는 거의 안 해오고 학교에 제때 오는 적이 없으며 친구들과 매일 싸우는 이유를 들어 일반고 진학 준비가 되지 않았고, 의사가 되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대안학교인 쿠바학교 사진반 학생이 콧수염을 붙인 친구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일반고에 진학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이 학교에 온 학생들은 특기적성 수업을 들으면서 “나도 학교에서 잘할 수 있는 게 있다”고 깨닫는다. 코펜하겐=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대안학교인 쿠바학교 사진반 학생이 콧수염을 붙인 친구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일반고에 진학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이 학교에 온 학생들은 특기적성 수업을 들으면서 “나도 학교에서 잘할 수 있는 게 있다”고 깨닫는다. 코펜하겐=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단 한 명도 포기 않는 교육

‘준비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은 학생은 여러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다. 코펜하겐 청소년진로지도센터의 존 빈테 크누센 부서장은 “어떤 교육을 받는 게 좋을지 진로상담가가 추천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일반고나 직업학교 같은 정규 교육과정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고 설명했다. 초중등학교 졸업생의 60∼70%는 일반고에, 나머지는 직업학교에 간다.

코펜하겐에 있는 쿠바학교는 대안학교다. 가정불화 왕따 같은 문제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이 주로 온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2개월간 조금 특별한 교육을 받는다.

요리반 학생은 전교생을 위한 점심을 일주일에 4번 만든다. 등교해서 재료를 손질하고 끓이고 배식한 뒤 설거지까지 정신이 없다. 요리반의 시몬 크로그네스 군은 “요리를 친구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힘들었던 건 다 잊게 된다.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사진반은 얼굴에 콧수염을 붙인 여학생의 사진 등 6개월에 한 번씩 주제를 정해 전교생의 사진을 찍어 전시한다. 음악반은 작곡한 노래를 기타 드럼 베이스로 연주한다. 이외에도 △체육 △연극 △그래픽디자인 △영화 △매거진 등 다양한 반이 있다. 수학 영어 덴마크어 같은 수업도 있지만 꼭 들을 필요는 없다.

페테르 샨트 교장은 “학교에서 못한다는 이야기만 들었던 학생이 잘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게 목표다. 거기서 좋은 에너지를 얻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정상적으로 생활하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안학교는 덴마크에 80개가 있다. 매년 1만 명이 거쳐 간다.

청소년진로지도센터가 운영하는 ‘정화교실’도 있다. 6개월 동안 기업에서 일하며 대인관계를 쌓거나 체육 활동을 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병원 치료를 받도록 한다.

진로상담가 모르텐 오고르 씨는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맞춤형 교육을 한다. 그래야만 고등학교 졸업 비율 95%를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10학년 △주간 고등학교 △그룹 카운슬링 △새로운 길 등 20여 개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고등학생의 진학 상담은 지역진로지도센터 소속 진로상담가들이 맡는다. 일반고 학생은 주로 대학을 갈지 말지, 대학에서는 어떤 전공을 택해야 할지를 상담한다. 직업학교 학생은 바로 일자리를 구할지, 기술직업학교에 진학할지를 상담한다.

학생은 지역진로지도센터가 개최하는 직업축제나 적성 찾기 워크숍에 참석할 수 있다. 2년 전부터 도입된 ‘e가이던스’ 시스템을 이용하기도 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진로상담가에게 질문을 남기면 대개 24시간 내에 답변을 받는다.

코펜하겐=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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