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아파트의 변신 Season 2]30대 여성이 집에 꼭 두고 싶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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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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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은 안마의자, 주부는 로봇청소기 1순위

‘골드(Gold)’란 말은 결코 아무 데나 붙이는 게 아니다.

런던 올림픽만 봐도 그렇다. 전 세계 204개국에서 모인 국가대표들만 1만1000여 명. 그들 중 고작 302명(1팀을 1명으로 간주)만 ‘골드메달’을 목에 걸었다. 프로야구에선 각 포지션마다 그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골든글러브’를 수여한다. 의학드라마의 제목 ‘골든타임’은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치료효과를 볼 수 있는 제한시간을 뜻한다. 사람들은 이처럼 매우 뛰어나거나 중요한 것만을 골드에 비유한다.

‘미스’ 앞에 ‘골드’가 붙은 이들은 어떨까. 영어에선 전혀 족보를 찾아볼 수 없는 ‘콩글리시(코리안+잉글리시)’지만, 골드의 의미만큼은 다르지 않다. 골드미스는 흔히 30대 미혼여성 중 일정 수준의 학력과 재산을 갖추고 있고, 연소득도 꽤 높은 커리어우먼을 말한다. 돈 많은 독신여성의 큰 씀씀이에 매료된 마케터들이 그들을 추앙하며 만든 말이겠지만…. ‘올드미스’란 단어는 사실상 비아냥거림의 정서가 지배적이지만, 그에서 파생된 골드미스는 존중을 넘어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30대 미혼자 비율은 2000년 13.4%에서 2010년 29.2%로 두 배로 높아졌다. 여성의 사회진출은 더 활발해졌으므로 골드미스도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골드미스를 위한 아파트마저 출현하는 것 아닌가. 이쯤에서 그들의 생각이 궁금한 것은 당연한 수순일 터. ‘O₂’는 SK마케팅앤컴퍼니의 ‘틸리언패널’ 중 30대 여성 600명에게 집에 관련된 여러 생각을 들어봤다. 골드미스(연봉 4000만 원 이상)와 그보다 소득이 낮은 ‘실버미스’, 기혼자가 각각 200명씩 응답했다.

○ 자기계발엔 열심, 살림엔 무관심


골드미스라고 대부분 혼자 살 거란 생각은 선입견이었던 모양이다. 아직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경우가 64.0%나 됐으니 말이다. 실버미스(77.0%)보단 낮은 수치였지만, 능력이 있다고 무조건 부모와 떨어지는 걸 선호하진 않는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김소리 씨(38·음악가)는 “20대일 땐 독립하는 게 꿈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며 “혼자 살면 자유롭긴 하겠지만, 살림도 직접 해야 하지 않나.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내세운 이유는 또 있었다. 반려동물을 무척 사랑하지만, 혼자선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

실제 30대 여성들에게 집에 꼭 있었으면 하는 것을 묻자 미혼자(골드미스+실버미스) 5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골랐다(1∼3순위 합계). 기혼자들은 같은 답변이 겨우 8.5%였다. 미혼자의 1등 품목은 안마의자(44.8%). 홈시어터(34.0%)와 에스프레소머신(33.5%)을 원하는 이들도 많았다. 기혼자도 안마의자(44.5%)를 많이 꼽았지만, 로봇청소기(52.5%)에 대한 욕구가 더 컸다.

미혼자들은 아무래도 평일 집에서 보내는 평균 시간(잠자는 시간 제외)이 기혼자들보다 짧았다. 주말에는 미혼자들도 절반 이상이 ‘외출을 거의 안 한다’거나 ‘가끔만 한다’고 답해 기혼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집에 혼자 있을 때 주로 뭘 할까(1∼3순위 합계). 골드이든, 실버이든, 아니면 결혼을 했든 상관없이 압도적 1위는 ‘TV시청’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보면 TV를 본다는 골드미스가 66.5%로, 실버미스(83.5%)나 기혼자(81.5%)보다 훨씬 낮았다. 골드미스 중 ‘살림을 한다’는 답변은 16.0%에 그쳐 기혼자(55.0%)의 삶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골드미스들은 대신 모자란 잠을 자거나(37.5%) 실내운동을 한다(15.0%)고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대상이 기혼자는 가족(92.0%), 취미생활(31.0%), 쇼핑(28.0%)이었던 반면, 골드미스는 가족(59.0%), 자기계발(38.0%), 취미생활(37.5%) 순이었다.

○ 집은 잠자는 곳, 교통이 제일 중요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미혼자들에겐 역시 ‘침실이나 침대주변’(골드미스 54.0%, 실버미스 57.5%)이었다. 기혼자가 ‘거실’(57.5%)을 1순위에 꼽은 것과 비교가 된다. 그리고 기혼 여성들은 안중에도 없는 ‘서재나 책상주변’을 고른 골드미스가 12.5%나 됐다.

김새미 씨(39·의류디자이너)는 꼭 10년 전 독립했다. 회사와 가까운 청담동의 원룸에서 6년간 살다가 2008년 개포동의 18평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 그는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주변이 조용한지와 교통이 편리한지였다”고 했다. 현재 사는 집의 경우 양재천이 가까워 운동하기 좋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줬다.

골드미스와 기혼자는 집을 구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었다. 골드미스는 접근성(35.5%)이 가장 큰 관심사였지만, 기혼자에겐 쾌적성(38.0%)이 더 중요했다. 골드미스 중에는 주변 환경(14.5%)과 안전성(9.5%)을 선택한 비율도 기혼자(9.0%, 7.5%)보다 다소 높았다. 투자가치를 우선시하는 골드미스(3.5%)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현 거주지에 대한 골드미스의 가장 큰 불만은 ‘옷, 신발의 수납공간 부족’(31.5%)이었다. ‘인테리어 불만족’(11.0%), ‘외부 노출’(9.5%)이 뒤를 이었다. LG경제연구원의 ‘2011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에 따르면 한국의 1인 가구는 혼자 살아서 불편한 점으로 △몸이 아파도 돌봐줄 사람이 없다 △혼자 있어서 외롭다 △혼자 살기에 적합한 집을 구하기 어렵다 △1인 가구를 위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없다 등을 꼽았다.

골드미스를 비롯한 1인 가구의 증가는 산업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신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1인 가구의 4대 소비트렌드로 ‘크기는 줄이되 성능은 유지’, ‘제한된 자원의 효과적 사용’, ‘신체적 안전과 정서적 안정’, ‘자기 가치제고와 여가 향유’ 등을 제시했다.

○ 골드미스는 사회의 산물이다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능력 있는 여성’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베이비붐과 연관이 깊다. 구정화 경인교육대 교수(사회과교육)가 ‘퍼센트경제학’(2009년·해냄)에서 편 논리는 다음과 같다.

보통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서너 살 많은 남성들과 결혼을 한다.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2년)들 중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한 독신여성이 많았던 이유다. 그런데 ‘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6년)의 독신여성들은 형제자매도 적고, 훨씬 많이 배워 사회로도 활발히 진출했다. 미혼을 유지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 골드미스 계층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구 교수는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점부터 골드미스가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골드미스가 사회의 ‘무연(無緣)화’로 인해 나타난 계층이라는 해석도 있다. 무연사회라는 말은 인간관계가 희박해진 사회라는 뜻. 2010년 1월 NHK가 ‘무연사회: 무연사 3만2000명의 충격’이란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뒤 일본에서부터 크게 유행하고 있는 말이다. 일본의 종교학자 시마다 히로미는 ‘사람은 홀로 죽는다’(2011년·미래의창)에서 “일찍이 무연화는 도시상경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중략) 상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예전처럼 대단한 기세는 아니다. 대신 도시 내부에서 무연화가 진행되고 있다. 골드미스, 골드미스터와 같은 독신자의 탄생도 이런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썼다. 혼자 살기에도 충분히 편한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심지어 결혼관계도 점차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새미 씨는 개인사정으로 올해 5월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오랜 기간 ‘남자친구’로 지냈던 이와 결혼을 한다. 직전 직장의 연봉이 1억 원이었고, 전세보증금 말고도 경기 용인시의 아파트 한 채까지 소유한 그가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결심한 건 아닐 터. 그는 “일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문득 결혼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골드미스 20.0%는 ‘결혼’을, 25.5%는 ‘연애’를 현재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답했다. 회사일(31.0%)보다는 낮지만 상당한 수치다. 이제 골드미스라는 타이틀을 벗게 될 김 씨. 다른 골드미스들은 이를 ‘해피엔드’라 말할지, ‘새드무비’라 말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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