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은 ‘10년 성적’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서울북부지법 서기호 판사가 어제 법관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는 2001년 판사로 임용돼 재임용 심사 대상이 된 사법연수원 29기 등 120여 명 가운데 하위 2%에 드는 근무 평가를 받았다. 10년에 걸쳐 5개 법원에서 7, 8명의 법원장에게 받은 평가이므로 이념이나 친분 관계에 따른 주관적인 평가라고 항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 판사는 지난해 소송 당사자들이 다투는 사안에 72자밖에 안 되는 판결 이유를 쓰고 판결문에 “별지(別紙)와 같다”는 식으로 적은 뒤 변호사가 제출한 서류를 갖다 붙인 일도 있다.

헌법은 법관의 신분 보장을 위해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으면 파면되지 않는다’고 규정했지만 법원조직법은 재임용을 제한할 수 있는 3가지 사유를 적시했다. 신체 또는 정신적 장해, 근무 성적의 현저한 불량, 판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다. 서 판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가카의 빅엿’이라는 글을 올린 것도 모자라 ‘SNS 발언을 분별력 있게 하라’는 대법원의 권고도 무시했다. 업무 부적격 사유 가운데 근무 성적 불량과 품위 손상 등 2가지를 충족한 셈이다.

1988년 이후 재임용 절차에 따라 탈락한 법관은 서 판사를 포함해 5명뿐이다. 일반적으로 해마다 5, 6명의 법관이 법관인사위원회의 부적격 통보를 받았지만 대부분 이의 제기 없이 자발적으로 사표를 내고 떠났다. 법관 임기제와 재임용제를 도입한 것은 10년 임기 동안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되 임기가 끝났을 때 법관의 자질과 능력을 새로 평가함으로써 무사안일과 자기 해이를 막자는 취지다. 법관의 신분 보장이라는 보호막 뒤에서 실력과 자질이 미달되는 법관이 온존하면 대(對)국민 사법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법관과 재판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된다.

대법원은 법관 재임용 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내부 비판을 과감하게 수용하면서 재판의 완결성, 법관 자질, 직업적 충실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법관평가 제도가 정권의 변화에 따라 미운 털 박힌 사람을 솎아내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법원장의 평정권(評定權)이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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