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한국기업 세계를 품다]<6> 페루 빈민촌 교육 지원하는 대우일렉트로닉스

동아일보 입력 2012-01-30 03:00수정 2012-07-11 15:0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세탁기가 왔습니다…동냥아이 구원해줄 마법같은 세탁기가
한국의 대우일렉트로닉스가 27일(현지 시간) 페루 리마에서 대표적 빈민가인 카야오 지역에 있는 도라마이에르 초등학교에 대형 세탁기 3대를 선물했다. 학교 측은 교내에 ‘유료 세탁소’를 차린 뒤 인근 주민을 상대로 돈을 받아 학생들에게 급식비와 교재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수산을 제게 맡겨주세요. 친딸처럼 키우겠습니다.”

2008년 페루 수도 리마에서 370km 떨어진 찬차마요 시 피차나키 단칸방. 한국인 교포 오문수 씨(64)가 리마에서 자동차로 8시간을 달려 해발 3820m 안데스 산맥 너머 이곳을 찾았다. 33m²(약 10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는 1남 3녀와 부부까지 여섯 식구가 모여 있었다. 집 안은 변변한 가재도구 없이 이층침대들로 꽉 들어찼다.

지켜보기만 해도 답답한 공간이었지만 오 씨는 이 집 둘째 딸 수산 모알리 오소리오 양(17)을 보자마자 마음이 환해졌다. 대우일렉트로닉스 페루지점 후원으로 2007년부터 시작한 ‘코파 셀바 센트럴(중앙 밀림지역) 청소년 배구대회’에서 소녀를 처음 만났을 때 생긴 바로 그 느낌이었다. 그해 결승전에 올라온 당시 12세의 수산을 보는 순간 오 씨는 그에게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소녀의 외모와 체격이 생전 자신의 딸을 쏙 빼닮았던 것이다. 이날부터 수산은 오 씨를 ‘파드리노(대부·代父)’라고 불렀다.

수산의 친아버지는 벌목꾼,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했다. 둘이 열심히 벌어도 아이들 학비조차 대기가 힘들었다. 이후 오 씨는 매달 이들에게 생활비를 부치면서 프로배구 선수가 꿈인 수산을 위해 한국 프로배구팀으로 유학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오 씨는 “한국식으로 체계적으로 교육시켜서 수산의 오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며 “우리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준 대우일렉이 참 고맙다”고 했다.

관련기사
○ 스포츠로 페루인과 소통하다

오 씨는 수산을 만나기 1년 전 급작스레 친딸을 잃었다. 한동안 실의에 빠졌던 그는 교포모임을 통해 친해진 이 나라 스포츠 영웅 박만복 페루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정흥원 찬차마요 시장 등과 함께 ‘코파 셀바 센트럴’ 배구대회를 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페루 밀림지역 청소년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건전한 여가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였다.

10년 넘게 찬차마요 시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정 시장이 사재를 털어가며 배구대회 운영비를 댔지만 결국 커다란 벽에 부닥쳤다. 청소년들과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각종 경품을 개인이 모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이때 박 감독을 통해 사정을 전해 들은 대우일렉이 경품 지원에 흔쾌히 나섰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01년 페루지점을 일시 폐쇄하는 등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컸지만 대우일렉은 장기적 관점에서 페루인의 마음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우일렉 지원으로 상위권 팀에 세탁기 등 각종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4강 진출 팀 전원에게 이곳에선 귀한 CD플레이어를 나눠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배구대회는 불과 5년 만에 찬차마요를 비롯한 4개 도시, 40여 개 팀이 참가하는 거대한 지역축제로 커졌다. 지난해 12월에 마친 5회 대회 결승전에는 시민 2500명이 한꺼번에 몰려 성황을 이뤘다.

진심으로 페루인들에게 다가서려는 대우일렉의 결정은 옳았다. 2004년 페루지점을 다시 개설한 대우일렉은 사회공헌활동 등에 힘입어 매출액이 2009년 1600만 달러(약 179억 원)에서 지난해 2500만 달러(약 280억 원)로 56.4%나 뛰었다. 특히 사회공헌에 이어 제품 개발에도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적용해 페루 전통식품 조리에 특화한 ‘셰프 페루아노’ 전자레인지는 같은 기간 매출액이 112% 증가했다. 페루 전통 문양인 나스카 디자인을 넣은 세탁기 판매도 지난해보다 60% 늘었다.

이에 따라 대우일렉의 해외 매출액 가운데 중남미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22%에서 지난해 29%로 증가한 데 이어 올해는 32%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세탁기

“이 세탁기가 길거리 동냥에 나설 수밖에 없던 아이들을 이제 학교로 불러들일 수 있을 거예요!”

27일(현지 시간) 리마 시내 도라마이에르 초등학교에서 만난 주부 주디 파레데스 호노레스 씨(41)는 대우일렉이 이날 기증한 세탁기 3대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마치 귀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레 매만졌다. 세탁기로 아이들을 길거리에서 구해낼 수 있다는 말이 처음에는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설명을 죽 듣고서 이해가 갔다.

이 학교가 자리 잡은 곳은 리마 시내에서 대표적인 빈민가로 손꼽히는 카야오 지역. 주변을 둘러보니 철근이 삐죽이 솟아있고 지붕이 뻥 뚫린 집들이 곳곳에 보였다. 마을 관계자는 “돈이 없어 지붕을 미처 올리지 못한 것”이라며 “그나마 이 지역은 비가 오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전했다.

좁은 이면도로에 들어서자 부모 중 한쪽이 없거나 고아인 아이들이 몰려들어 사탕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 학교 관계자는 “1누에보솔(약 416원)짜리 사탕을 2누에보솔(약 832원)에 파는 것인데 빈곤에 내몰린 아이들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사실상 거리 동냥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교 수업도 근근이 이뤄지고 있다. 전교생이 2975명이나 되지만 재원 부족으로 교실 수를 늘리지 못해 아침, 점심, 저녁반으로 학생들을 나눠 3부제로 운영하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도저히 학교 수업만 듣기 힘든 아이들을 위해서 교실 한편에 재봉틀을 갖다놓고 전문교사들이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 교육반이 따로 있었다.

교사 지도 아래 어린 학생들이 옷감으로 바지나 인형 등을 만들면 부모들이 이를 시장에 내다팔아 수입에 보탠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재봉 일을 가르치는 올가 에스테르 카이초 토레스 교사(45·여)는 “아이들이 만든 인형을 부모들이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주로 판다”며 “보통 인형 한 개당 25누에보솔(약 1만400원)에 팔면 재료비 등을 제외하고 9누에보솔(약 3744원) 정도가 손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어린 학생들의 고충이 적지 않자 학교는 이날 대우일렉의 기증행사가 열리기 몇 주 전부터 학부모들과 수차례 회의를 가진 뒤 교내에 ‘유료 세탁소’를 차리기로 결정했다.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세탁물 kg당 8누에보솔(약 3328원)의 돈을 받기로 한 것이다. 이 지역은 상하수도 시설조차 아예 설치돼 있지 않아 지방자치단체가 정기적으로 보내는 식수차로 물을 구하고 있다. 식수마저 귀한 마당에 주민들에게 세탁기는 언감생심인 셈이다.

미겔 앙헬 아레세 교장(48)은 “세탁비로 거리에서 사탕을 파는 학생들에게 급식비와 교재비 등을 지원해 줄 것”이라며 “대우일렉의 세탁기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10년 봉사의 힘… ‘한국인 첫 중남미 市長’ 당선▼

■ 정흥원 찬차마요 시장

“‘코파 셀바 센트럴’ 청소년 배구대회가 시장 당선에 한몫했습니다.”

27일(현지 시간) 페루 리마 시내의 대우일렉 사무실에서 만난 정흥원 찬차마요 시장(65·사진)은 현지인처럼 까맣게 탄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 시장은 전날 밤 밀림지대에 있는 찬차마요에서 리마까지 자동차로 8시간을 달려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2010년 중남미 지역에서 시장에 당선됐다. 당시 페루 언론은 14년 연속으로 자리를 지킨 전임 시장을 한국인이 이긴 것에 대해 ‘이변’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 교민들은 정 시장이 10년 넘도록 이 지역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벌여온 것을 현지 주민들이 높이 평가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정 시장은 1986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난 뒤 1996년 페루 찬차마요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식당을 경영하던 정 시장은 우연히 불우이웃의 사연을 소개하는 현지 라디오 방송을 듣고 봉사를 시작했다.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주민이 있으면 돈을 부쳐주고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으면 손수 음식을 보내는 식이었다. 이런 노력이 수년간 이어지자 나중에는 해당 방송 PD가 사연을 올린 사람들의 주소와 연락처를 입수하자마자 곧바로 정 시장에게 통보해줬다.

그는 봉사활동에 나선 배경에 대해 “다른 민족에도 개방적인 이 나라에 고마웠을 따름”이라고만 했다. 상대적으로 백인이 많아 인종차별이 심한 아르헨티나와 달리 일본계 대통령이 선출될 정도로 페루는 유색인종에도 관대하다는 설명이었다.

정 시장은 특히 올해로 6년째 코파 셀바 센트럴 청소년 배구대회를 후원하는 대우일렉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낙후된 밀림지역에서 절망한 아이들이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학부모들로부터 ‘배구로 아이들이 달라졌다’는 내용의 감사편지를 받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남은 시장 임기 동안 한국 정부 및 기업들과 손을 잡고 상하수도조차 없는 이 지역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따라 과거 한국 농어촌에서 벌였던 새마을운동과 비슷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손잡고 총 200만 달러(약 22억4000만 원)가 투입되는 보건소 건설사업을 추진 중이다.

리마=글·사진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