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갑오징어, 주꾸미, 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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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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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자, 서해바다 가을낚시

《 나, 절대로 물고기가 아니여. 같은 물에 산다고 그런 서운한 소릴랑 하질 말어. 어류도감에도 안 나와. 유식헌 사람들은 우리를 연체동물이나 두족류(頭足類)라고 부른단 말여. 멍청한 물고기들보다 머리도 훨씬 좋소. 먼 친척인 문어 형님은 특히 아이큐가 높아. 미로(迷路)도 통과하고 병뚜껑도 돌려 열 수 있을 정도여. 나가 헤엄도 제트기처럼 빠르게 잘 치는 건 알고 있남? 그라고 내 등 한번 만져 보소. 나, 이래봬도 ‘뼈대’ 있는 오징어여.

- 서해 갑오징어 대표 ‘갑돌이’ 》


가을바다 속은 두족류 세상입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땅에서 말(馬)이 살찌듯 바다에선 오징어 주꾸미 살이 오르지요. 물속은 모래 위를 걸어 다니는 주꾸미와 멸치 새우를 노리며 날아다니는 갑오징어로 가득합니다.

두족류 낚시는 ‘생활낚시 종결자’ 또는 ‘가장 맛있는 낚시’로 불립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가을 오징어와 주꾸미는 살이 연하고 쫄깃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랍니다.

O₂가 독자 여러분을 주꾸미 오징어 낚시의 흥미진진한 세계로 초대합니다.

○ 주꾸미 선상 낚시는 속도전

가을 서해 바닷속은 두족류 천국이다. 겨울을 앞두고 열심히 먹어 살이 오른 주꾸미, 갑오징어가 지천이다. 선상 낚시에 나선 배서연(왼쪽), 김민영 씨가 방금 낚아 올린 주꾸미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두 사람은 낚시가 끝난 후 보들보들한 가을 주꾸미를 먹으며 “맛있다”란 감탄사를 연발했다. 주꾸미가 매달려 있는 것이 주꾸미용 인조 미끼, 그 오른쪽의 새우처럼 생긴 것이 갑오징어를 노리는 ‘에기’다. 서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촬영 협조 와일드로즈
가을 서해 바닷속은 두족류 천국이다. 겨울을 앞두고 열심히 먹어 살이 오른 주꾸미, 갑오징어가 지천이다. 선상 낚시에 나선 배서연(왼쪽), 김민영 씨가 방금 낚아 올린 주꾸미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두 사람은 낚시가 끝난 후 보들보들한 가을 주꾸미를 먹으며 “맛있다”란 감탄사를 연발했다. 주꾸미가 매달려 있는 것이 주꾸미용 인조 미끼, 그 오른쪽의 새우처럼 생긴 것이 갑오징어를 노리는 ‘에기’다. 서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촬영 협조 와일드로즈
지난달 27일 충남 서천군 서면 홍원항. 새털구름이 펼쳐진 파란 수평선을 향해 쾌속엔진을 단 ‘돌핀2호’가 나는 듯이 달려간다. 큰 물결과 만날 때마다 뱃머리가 물 위로 솟았다 떨어진다. 뱃바닥이 텅, 텅 하며 수면을 치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물 위의 홍원항은 볼거리가 별로 없는, 그냥 평범한 어촌이다. 하지만 물속은 별천지다. ‘쭈꾸미’라 불러야 더 친숙한 주꾸미가 지천이다.

낚시는 “내리세요”란 선장의 지시로 시작된다. 주꾸미 낚시는 아이들이나 여성들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아이큐가 두 자리만 되어도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얀 도자기 구슬에 여러 개의 낚싯바늘이 달린, 주꾸미 모양을 흉내 낸 인조미끼를 바닥에 내리기만 하면 주꾸미들이 달라붙는다. 현지 주민들은 “미끼가 암컷인 줄 알고 수컷들이 덮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말대로라면 주꾸미는 ‘사랑을 위해 불나방처럼 목숨을 던지는’ 로맨틱한 존재. 그러나 주꾸미는 이른 봄에 교미를 해 4, 5월에 주로 산란하니 앞의 설명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주꾸미가 미끼를 먹이 또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으로 알고 달려드는 것으로 본다.

주꾸미를 낚을 때는 두 가지 원칙만 지키면 된다. 첫째, 미끼가 주꾸미의 서식지인 바닥에 닿으면 일단 OK다. 둘째, 바닥에 닿은 미끼를 살짝 들었을 때 무게감이 느껴지거나 낚싯대 끝부분(초릿대)이 은근히 휜 상태이면 주꾸미가 미끼에 올라탄 것이니 줄을 감아올리면 된다.

낚시를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경기 화성에서 온 배서연 씨(23)의 낚싯대가 반달처럼 휘어졌다. 끙끙대며 줄을 감으니 미끼 위에 주꾸미 한 마리가 턱 하니 앉아 있다. 배 씨는 “살아있는 주꾸미는 처음 본다”며 좋아했다. 함께 출조한 친구 김민영 씨(23·경기 군포시)는 “귀엽지만 충분히 회로 먹을 자신이 있다”며 입맛을 다셨다.

“11-24(좌표)에 좀 나오죠?” 김헌영 선장(홍원항 바다낚시)이 계속 무전으로 다른 배들과 정보를 주고받는다. 배에 탄 일행이 모두 한 마리씩을 잡아 손맛을 보기 시작했는데도 다른 포인트로 옮기자고 한다. “이렇게 해서는 낚시 못하지.” 낱마리 수확에는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가을 주꾸미 선상 낚시는 ‘속도전’이다. 개체수가 많아 채비를 더 자주 내리는 사람이 더 많이 잡을 수 있다. 보통 오전 6시∼오후 2, 3시까지 배를 타는데 고수들은 100마리를 쉽게 넘긴다. 배낚시엔 아무래도 물살이 빠른 사리 무렵보다는 조류가 약한 조금 무렵이 더 좋다. 물살이 너무 세면 주꾸미가 모래 속으로 숨는 경우가 많다. 채비가 바닥에 닿지 않고 떠 있는 경우도 흔하다.  
▼ 짜릿짜릿 손맛 “던지면 문다”… 쫄깃쫄깃 입맛 “착 감겨 좋다” ▼

물론 주꾸미 먹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다. 선상에서 날로 먹어도 꿀맛이고 삶거나 볶아 먹어도 좋다. 특히 배 위에서 끓여 먹는 ‘주꾸미라면’은 흔히 접할 수 없는 호사다. 점심때가 되니 옆 배의 조사들이 “라면 들고 하세요”라며 손을 흔든다. 잡은 주꾸미를 항구 식당에 가져가면 조리비만 받고 요리를 해 준다. 김 선장은 “예전엔 중국음식점에서 탕수육도 만들어줬다”고 했다.

흔히 주꾸미는 봄이 제철이라고 하지만 홍원항 사람들은 가을 주꾸미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전북수산기술연구소에서 주꾸미 종묘 생산을 담당하는 신병호 사육사는 “산란기인 봄 주꾸미는 영양분을 알로 보내지만 가을 주꾸미는 겨울을 앞두고 몸에 영양분을 축적해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맛이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낚시에서 잡은 주꾸미를 먹어 보니 지금까지 먹어본 주꾸미보다 훨씬 육질이 부드럽고 맛있었다. 주꾸미에는 몸에 좋은 타우린(아미노산의 함량)이 오징어보다 5배 정도나 많이 들어 있다. 타우린은 시력을 좋게 하고 당뇨병을 예방하며 면역력을 강화해 준다. 두족류에 콜레스테롤이 많아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은 혈관계 질환을 예방해 주는 고밀도 콜레스테롤이다.

○ 갑오징어,‘사이키조명 쇼’로 먹잇감 홀려

서해 갑오징어 낚시는 가을이 제철이다.
서해 갑오징어 낚시는 가을이 제철이다.
가을 서해안 진객으론 갑오징어도 빼놓을 수 없다. 갑오징어는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는 오징어 종류 중 맛으론 최고로 꼽힌다. 보들보들하고 두꺼운 살은 마트에서 흔히 파는 살오징어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갑오징어는 연체동물로선 특이하게도 ’뼈’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진짜 뼈는 아니다. 갑오징어와 조개는 조상이 같은데 그 조상의 조개껍데기 비슷한 조직이 진화 과정에서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갑오징어는 인조 미끼인 ‘에기’를 써서 잡는다. 에기는 일본의 전통 오징어 어로도구(餌木)에서 발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이후 루어·플라이 낚시인들이 오징어 낚시 붐을 일으켰고 에기를 이용한 낚시(에깅)가 바다낚시의 중요한 장르 중 하나가 됐다.

서해 선상낚시에서는 낚싯줄 맨 아래에 주꾸미 미끼를 달고 그 위에 에기를 2개 정도 달아 갑오징어를 함께 노린다. 갑오징어는 보통 주꾸미 10마리당 한두 마리 비율로 올라온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갑오징어를 노리려면 주꾸미 미끼를 납추로 바꾸고 포인트를 옮기는 게 좋다. 주꾸미는 주로 모래바닥이나 펄에 살지만 갑오징어는 암초 주변에 주로 살기 때문이다. 바늘이 많은 주꾸미 미끼는 암초에 걸리기 쉽다.

갑오징어 낚시를 할 때는 바닥에 내린 채비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고패질’을 해 줘야 한다. 그러면 눈이 밝은 오징어가 처음엔 두 개의 ‘먹이 다리’로 미끼를 붙잡았다가 나머지 다리까지 이용해 미끼를 움켜쥔다. 이때 챔질을 해 끌어올리면 된다. 그러면 갑오징어가 푸른 바다를 검게 물들이며 올라온다.

먹물은 오징어류의 가장 큰 방어무기. 하지만 몸속에 저장할 수 있는 먹물 양에는 한계가 있다. 두세 번 사용하면 먹물이 떨어진다. 낚시로 잡은 갑오징어를 그대로 들고 있으면 몸속에서 ‘장전된’ 먹물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인다.

갑오징어는 지능이 높고 그야말로 신묘한 사냥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게 같은 먹잇감 앞에서 피부 위에 현란한 ‘사이키 조명 쇼’ 또는 ‘홀로그래픽 애니메이션’을 펼친다. 현란한 패턴에 취해 멍해진 게가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 갑오징어는 게의 급소를 공격한다(‘급진전 진화-과학의 진보가 가져올 인류의 미래’·조엘 가로·지식의 숲).

현재 홍원항에서 잡히는 갑오징어는 몸길이가 10cm 정도로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겨울이 가까워올수록 하루가 다르게 커져 20cm까지 자란다는 것이 김 선장의 설명이다.

갑오징어 낚시를 할 때는 가끔 채비를 바꿔 광어를 노리는 것도 좋다. 기자도 가지고 있던 루어낚시 도구로 대충 광어 채비를 만들어 던진 지 10분 만에 A4용지 크기의 광어를 낚았다. 사용한 채비는 최근 바다낚시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드롭샷 리그(dropshot rig). 미끼가 바닥 위 30cm 정도에서 움직이며 눈이 항상 위쪽을 향해 있는 광어를 유혹한다.

김 선장에게 “광어가 나오네요”라고 하자 “요즘 씨알 좋은 광어가 많아요”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왜 광어 잡는 낚싯배는 없지요?” “주꾸미 갑오징어가 훨씬 쉬우니까 그렇지.” 잡기 쉬운 것들을 놔두고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말이었다.

○ 충남서 11월 중순까지 낚시 가능

주꾸미는 새끼 사랑이 절절하기로 유명하다. 신병호 전북수산기술연구소 사육사는 “봄철 주꾸미가 소라껍질 속에서 알을 품으면 먹이를 안 먹고 알이 부화할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다. 암컷 주꾸미는 빨판으로 알을 닦아주고 맑은 물을 흘려 산소를 공급하며 지성을 다한다. 알이 부화하고 나면 어미는 기운이 다해 죽고 만다. 서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주꾸미는 새끼 사랑이 절절하기로 유명하다. 신병호 전북수산기술연구소 사육사는 “봄철 주꾸미가 소라껍질 속에서 알을 품으면 먹이를 안 먹고 알이 부화할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다. 암컷 주꾸미는 빨판으로 알을 닦아주고 맑은 물을 흘려 산소를 공급하며 지성을 다한다. 알이 부화하고 나면 어미는 기운이 다해 죽고 만다. 서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주꾸미와 갑오징어는 서해와 남해 서부에서 주로 잡힌다. 수도권 낚시꾼들에게는 개체수와 접근성 측면에서 충남 보령시 오천항과 서천군 홍원항이 가장 유명하다. 주꾸미 갑오징어가 많은 포인트를 자유롭게 찾아다닐 수 있는 선상낚시가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 방파제나 해변에서도 낚시를 할 수 있다. 낚시는 충남지역에선 11월 중순까지 가능하다. 1인당 선비는 6만∼7만 원이다.

주꾸미 갑오징어 낚시의 경우 가족 단위로 출조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녀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잡은 주꾸미와 갑오징어는 항구 근처 식당에서 요리를 해 준다.

취재진은 김헌영 선장의 이웃이 운영하는 홍원항 바다횟집에서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볶아달라고 해 먹었다. 광어는 회를 떴다. 딱 한 접시만 나왔지만 살이 단단해 ‘역시 자연산’이란 감탄이 나왔다.

한편 같은 기간 동해와 남해 동부에서는 무늬오징어가 낚시로 잡힌다. 바다낚시 사이트인 ‘어부지리’(www.ayfishing.com) 운영자 민평기 씨는 “무늬오징어는 5kg까지 자라는 대형종으로 맛이 아주 좋다”며 “주로 전용 장비를 쓰는 경험자들 위주로 낚시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요즘 배낚시에서 주로 낚이는 씨알은 500g 정도이며 갑오징어처럼 점점 씨알이 커지는 추세다.

서천=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취재 협조 ‘홍원항 바다낚시’(hongwonhang.co.kr)  
월간 ‘낚시춘추’(fish.darakw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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