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북스]김병만 “양쪽 발목 오래전에 부러졌다. 수술 안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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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4일 0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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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양쪽 발목…아프면 진통제 먹는다"
●"과거 '거지같은 놈'이라고 욕먹기도 했다."
●"'토할 뻔했다', '더럽다'는 말에 상처 받아…"
●"김연아의 눈물 보고 행복했다."

\'달인\' 김병만은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그맨 후배들에게 자전에세이‘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달리다 보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달인\' 김병만은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그맨 후배들에게 자전에세이‘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달리다 보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엄마, 나를 왜 이렇게 가난하게 만들었어!"
"엄마, 난 빽도 없고 이게 뭐야?"
"세상이 다 거지같아."

"미안하다."

'달인' 김병만이 자신의 인생 역경을 담은 자전에세이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를 출간했다.

김병만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어려웠던 가정형편,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무명생활, 발목 부상 등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인생여정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개그맨이라는 꿈을 가지고 고등학생 때 서울로 올라온 그는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 까지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또 다른 아픔 이었다.

18일 KBS 신관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서 김병만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지금도 울컥 한다. 내 육체는 강해졌는데 마음은 더 약해졌다"라고 말했다.

과거 대학로에서 한 극단에 다녔던 김병만은 연습이 새벽에 끝나면 택시비가 아까워 벤치에서 노숙을 하며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벤치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고, 옷이 다 젖은 김병만은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악다구니를 해댔다고 한다.

김병만은 "그 당시 어머니가 욕이라도 했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미안하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작은 키도 그에게 큰 콤플렉스였다.

초등학교 때 작은 키 때문에 친구들에게 많이 맞고 다녔다는 그는 얼굴에 항상 멍이 들어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에게 왜 이렇게 작게 태어나게 했냐고 대들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작은 키가 고맙다. 작은 사람이 어려운 것을 해내면 더 큰 박수를 받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병만은 힘든 순간들이 닥칠 때 마다 "나란 사람은 개그맨이 될 수 없나?"라고 좌절하면서도 "아니야, 나 못나지 않았어. 난 저기(방송국) 꼭 들어 간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걸어가듯이 살아온 그는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엉금엉금 걸어온 결과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 김병만에게 '성실한 개그맨',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개그맨'이라는 수식어는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개그맨이라는 꿈을 안고 서울에 오기까지, 긴 무명생활을 견디며 '개그콘서트'라는 기회를 잡기까지, 김병만의 책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에는 그의 인생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빚더미 속 아버지, 식당일로 관절이 닳은 어머니, 무속인 할머니

개그맨 김병만이 수염을 그리는 이유는 찰리 채플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같이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찰리 채플린이 좋다"고 말했다.
개그맨 김병만이 수염을 그리는 이유는 찰리 채플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같이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찰리 채플린이 좋다"고 말했다.
김병만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었다. 할아버지는 큰 산과 토지를 가진 부농이었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됐다. 그 후 어머니가 멀리 식당에서 일을 하러 다녔다. 김병만은 이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김병만의 가족은 빚 때문에 그 산골 마을에서도 10번이 넘게 이사를 해야 했다. 어머니는 이사를 할 때마다 울면서 실신했다고 한다. 이 아픈 기억은 김병만의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는 듯 했다.

"어머니에게 집을 지어드리고 싶어 고향 땅 711평을 구입했어요. 그런데 그때 아버지의 대장암 수술과 치매로 집을 지어드리는 못했어요. 이제는 꼭 집을 지어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건축을 배우기 위해 건국대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정말 건축을 알고 싶어요."

"지금 급한 것은 가족이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도록 내가 도움을 주는 겁니다. 결혼보다는 가족이 우선입니다. 가족은 내 전 재산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병만아, 넌 방송 출연은 어려울 꺼야…"

김병만은 개그맨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신문에 난 연기학원 광고 전화번호를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3개월 동안 열심히 배웠으나 마지막에 자신에게 돌아온 말은 "넌 방송 출연은 어려울 거야. 방송 관련된 다른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라는 말이었다.

현실은 냉정했으나 김병만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난 될 꺼야. 나는 해낸다!"라는 다짐을 새기며 연극 극단에 들어갔다. 오디션에만 가면 심사위원들 앞에서 기가 죽어 한마디도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돈이 없었던 그는 옥탑방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지만 집을 구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노숙이 시작됐다.

"집이 없을 때는 무대 위에서 보조석을 올려놓고 잠을 자기도 했어요. 또 어떤 날은 아는 형이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잠을 자고 공중화장실에서 목욕을 했어요. 이 모습을 건물 관리인이 보고 '이 거지같은' 이라는 말을 해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연극 생활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생활비는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하고 신문을 팔면서 충당 했습니다. 너무 힘들면 난간에 서서 그냥 뛰어내릴까도 생각했어요. 안주도 없이 강술을 마시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날도 많았어요."

▶기회가 찾아오다! "KBS 김웅래 PD예요"

"고생 끝 낙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김병만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KBS 공개 오디션 2차에 떨어진 그에게 전화 한통이 왔다. 최초로 개그 프로그램을 만든 김웅래 PD가 그에게 '웃드라맨'이라는 페스티벌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김병만은 '하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외쳤다.

페스티벌에서 2등을 차지한 김병만은 오지환 감독의 영화 '선물'에 출연하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페스티벌에서 딱 두 명만 뽑혔는데 그 두명이 김병만과 그의 친구 이수근이었다. 이후 그들은 '개그콘서트' 오디션에도 참가해 슬랩스틱 개그를 선보이며 오디션 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개그콘서트'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병만은 "책 제목을 짓는게 가장 어려웠다"며 "'거북이'라는 단어는 평소 좋아했던 단어이고 인터뷰 할때도 거북이라는 말이 많이 해서 이 단어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김병만은 "책 제목을 짓는게 가장 어려웠다"며 "'거북이'라는 단어는 평소 좋아했던 단어이고 인터뷰 할때도 거북이라는 말이 많이 해서 이 단어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제 발목에는 지금도 부러진 뼛조각이 그대로 있습니다"

"양쪽 발목이 한참 전에 부러졌는데 이걸 어떻게 참고 지금까지 있었어요? 양쪽 발목의 복사뼈 바로 아래쪽에 물렁뼈가 모두 골절이 되어 있어서 수술을 해서 부러진 뼈를 제거해야 됩니다."

김병만은 개그콘서트에서 '대결 3인조'라는 코너를 맡아서 활동 하던 중 왼쪽 발목을 접질렸다. 이후 오른쪽 발목까지 아파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보던 의사는 수술을 권유했으나 3개월 동안 쉬어야 한다는 말에 결국 수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때문에 김병만의 발목은 지금도 통증이 심했다 괜찮다를 반복한다. 심할 때는 진통제를 맞아야 할 정도로 아프다고 한다.

이런 발목으로 피겨스케이팅을 했으니 발목이 괜찮을 리가 없다. 지난 6월 SBS '일요일이 좋다-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에 출연해 찰리채플린 분장을 하고 공연을 선보인 그는 발목 통증 때문에 무릎을 꿇고 심사평을 들었다.

그의 부상투혼에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김병만은 "당시 차가운 얼음판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도 전혀 시렵지 않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런데 그때 김연아의 눈물을 본 김병만은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것을 경험한 그녀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 눈물 때문에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다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김병만은 요즘 많이 불안하다고 전했다.

"요즘 들어서 잠을 잘 때 꿈을 참 많이 꿉니다. 책임감 때문인지 불안할 때도 많고요. 나는 100개의 칭찬 글을 보다가 한 개의 악플을 봤을 때, 그 한 개의 악플에 기가 죽습니다. 소심하죠."

"개그콘서트에서 '느끼함의 달인'을 할 때 느끼한 음식을 많이 먹었습니다. 달걀흰자를 한 컵 마시고, 돼지고기 비계부분을 큼직하게 잘라서 마요네즈에 찍어먹고 녹화 끝나고 화장실로 바로 뛰어갔습니다."

"녹화할 때는 나름 반응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방송 후 게시판에 '보다가 토할 뻔했다', '더럽다'는 의견을 보고 모니터를 껐습니다. 겁나서 열어보지를 못했습니다."

▶김병만의 팬 KBS 국장 "김병만은 나를 웃기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나를 울린다"

그는 출판기념회에서 "KBS 국장님의 제안으로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책 뒤편에는 이응진 KBS 국장이 생각하는 김병만에 대한 글이 있었다.

KBS 국장은 '개그맨 김병만'이 아닌 '배우 김병만'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그는 김병만이 자신을 웃기지는 못하지만 나를 울리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밝혔다.

"병만은 나를 웃기지 못한다. 나는 그의 개그를 보면서 웃지 못한다. 그런데 얼마 전 '키스앤크라이'에서 채플린 분장을 하고 스케이트를 타는 김병만의 모습을 보고 울었다."

"하고많은 개그맨 중에 사람을 웃기는 이는 많지만 사람을 울리는 개그맨이 있던가? 나는 김병만 밖에 보지 못했다. 그는 날 웃기기보다는 울리는 코미디언이다. 그래서 김병만을 좋아한다. 또 사람들은 그의 노력에 웃는다. 사람들은 그의 성실한 면에 감동한다."

동아닷컴 홍수민 기자 sum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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