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日우익 발광? 그래도 한류는 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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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4일 14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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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한류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일본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한류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일본배우 다카오카 소스케의 후지TV '한류편중' 비난이 일본 우익세력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8월 2일자 기사 '日 우익, 방송계 한류 붐에 화살'에 따르면 극우성향의 전 항공자위대 막료장(참모총장)인 다모가미 도시오 씨는 지난달 29일 트위터에서 "TV에서 한류 드라마가 하루 종일 방송되는 것에 나도 위화감을 느낀다"고 적어 또 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공공의 전파를 사용해 한국의 정보 전략에 협조하는 것은 중단됐으면 좋겠다. 어디선가 돈이라도 흘러나오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근거 없는 루머도 퍼뜨렸다.

요코하마시의 나카타 히로시 전 시장도 트위터에서 "(배우 다카오카의 발언이) 정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도대체 어느 나라의 TV이냐"며 후지TV를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도 많다. 나카야마 나리유키 전 문부과학상 역시 "(한류에 지배되고 있는) TV계의 현실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다카오카의 발언을 옹호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그의 해고에 반발하고 있는 네티즌들은 후지TV에서 8일 항의 데모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 방송의 불시청 운동도 전개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혐 한류 방아쇠가 된 다카오카는 지난 7월 23일 트위터에 "솔직히 채널8(후지TV)에는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지만 정말 보지 않게 된다. 종종 한국방송국인가 싶을 때도 있다. 우리 일본인은 일본 전통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데, 일단 한국 관련 방송이 나오면 TV를 꺼버린다니까"라고 적었다.

그는 또 "여기가 도대체 어느 나라인지라는 느낌이다. 기분이 나쁘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 세뇌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아." 등 여러 차례 한류에 대한 비난과 막말을 남겨서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바 있다.

●일본방송사가 한국 드라마를 과다 편성한 이유

여기서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다. 앞선 다모가미 도시오 발언처럼 결국 우익세력 특유의 음모론으로 빠져버리긴 했지만, 애초 다카오카 소스케의 문제 제기는 한국 드라마를 '지나치게' 많이 방영하는 후지TV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후지TV는 낮 시간대를 통째로 한국 드라마에 주고 있어 눈에 띌 뿐, 따지고 보면 후지TV 외에도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는 일본 방송사들은 많다. 다카오카 역시 이후 트윗부터일본 방송사 전체에 대한 메시지인양 얘기했다.

그런데 애초 왜 일본 방송사들은 그토록 한국 드라마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됐느냐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는 아직, TBS에서 프라임타임에 방영해 심심한 반응만을 얻었던 '아이리스' 예처럼, '그렇게까지' 시청률이 높진 않은데 말이다.

이에 대해 우익세력이 주장하는 건 늘 '보이지 않는 힘' 따위 음모론들이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더 한심하다. '아이리스'가 TBS 데뷔를 앞두고 있던 지난해 2월 23일자 요미우리신문의 분석이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당시도 이미 지상파 7개 채널에서 5편의 한국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고, 케이블 채널까지 포함 모두 36편이 방영 중인 시점이었다.

일본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한류 드라마 '찬란한 유산'.
일본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한류 드라마 '찬란한 유산'.

제이피뉴스 2010년 2월 23일자 기사 '日 안방, 미드 대신 한드가 차지한 이유'는 일본이 한국 드라마를 많이 방영하게 된 이유에 대해 요미우리신문을 인용하며 "일본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보다 한국 드라마를 구입하는 것이 저렴하고, 자국 내의 예전 드라마를 구입하는 것보다 저작권 처리가 간단하다"는 제작자 측면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봤다고 전했다.

매체는 최근 일본 방송국들은 시청률 불황으로, 유명 배우, 탤런트들을 기용한 드라마가 시청률 한 자리수를 기록하는 것이 부지기수라면서 톱클래스 급으로 여겨지는 쟈니스 소속사의 아이돌이나 오다기리 조 등의 실력파 배우가 출연해도 시청률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제이피뉴스는 결국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 방송국들은 '한류팬 부대'라는 고정 시청자가 보장되는 한국 드라마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한국 드라마가 제작 전부터 일본시장을 인식하고 제작하는 것도 한 몫 한다.(중략) 게다가 한국 드라마는 부가적인 DVD나 사진집 등의 시장도 열려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애초 시작은 '방송 불황 처리반'이었단 얘기다. 21세기 들어 일본 TV의 낮 시간대는 기본적으로 기존 드라마 재방송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낮 시간대 재방송 주역이었던 '2시간 드라마'들이 속속 폐지되거나 축소되면서 평일 낮 시간대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 돼버렸다. 여기서 '직접 제작보다 싸고, 재방송보다 저작권 처리가 간단한' 한국 드라마는 오아시스였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막상 편성해서 틀다보니 젊은 여성층에서 예기치 못한 반향이 후지TV '한류 알파' 코너를 통해 일었다. '찬란한 유산'은 평균 3.9% 수준이었던 오후 2시 시간대에 평균 6.6%, 최고 9.7%까지 시청률을 끌어올렸고, 이 같은 반응은 '미남이시네요'까지 그대로 이어져 DVD 박스 세트 대박을 냈다. 나머지는 그저 '되는 장사' 쪽으로 몰려 들어간 형국이란 것.

한 마디로 시장상황에 따른 판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다카오카 소스케가 "세뇌당하는 것 같아"라며 스리슬쩍 음모론을 던진 부분은, 알고 보면 이처럼 허접한 이유, '낮 시간대를 어떻게 하면 싸고 편하게 때울 수 있을까'에서 비롯된 상황이었을 뿐이다.

●'땜빵용'으로 들어갔다가 시장 잠식해버리는 한국 드라마

물론 일본만의 얘긴 아니다. 한국 드라마를 다수 방영하는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일본과 유사한 이유에서 한국 드라마 방영을 시작했다. 직접 제작하는 것보다 싸고, 반응도 대체로 좋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낯선 해외 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난 뒤엔 철저히 콘텐츠 자체의 매력과 퀄리티 승부로 넘어가버린다. 거기서 대부분 한국 드라마에 승부가 되질 못했다.

대만이 대표적 예다. 대만은 사실상 한류의 근원지에 가까운 국가다. 류밍량 주한 타이베이대표부 공보 총괄에 따르면 "한류(韓流)란 단어는 1997년께 대만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부터도 한국 드라마들은 대만에서 방영되고 있었고, 그만큼 경계의 의미도 포함해 만들어진 단어였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경계 의미를 담았다는 '한류' 탄생으로부터 5년 뒤, 한국 드라마는 오히려 대만 대중문화산업을 위협하는 존재로까지 성장하게 됐다. 2002년, 200여명의 대만 연예인들은 타이페이시에서 연예인노조가 발기한 반한(反韓), 항일(抗日) 및 일과 생존권 쟁취를 위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그 도화선은 SBS 드라마 '유리구두'였다. '유리구두'가 한국 드라마로서는 최초로 프라임타임인 8시에 방영되자 '겨울연가' 등이 그 뒤를 자연스레 이었다. 그러자 '일자리'와 관련해 위기의식을 느낀 대만 연예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대만 방송사들은 계속해서 한국 드라마의 '간편한 매력', 즉 싼 가격과 호의적 대중 반응에 고무돼 외려 한국 드라마 방영을 확대시키는 추세로 나아갔다.

일본에서 K-POP 신한류 붐을 일으킨 걸그룹 소녀시대.
일본에서 K-POP 신한류 붐을 일으킨 걸그룹 소녀시대.

동아일보 2009년 4월 18일자 기사 '대만 연예계 "황금시간대 한국드라마 막아라"'는 대만의 중스(中視), 타이스(台視), 화스(華視) 등 3대 지상파 TV가 오후 8시 황금시간대에 모두 한국 드라마를 방송하자 대만 연예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신문은 대만의 드라마 제작자이자 '종합예술의 대부'로 불리는 왕웨이중(王偉忠) 씨가 "한국 드라마를 강력히 막아내자"며 "문화사업을 키울 책임이 있는 방송국이 투자는 하지 않고 외국 드라마만 사다가 방영한다"고 비난했다고 적었다.

유명 TV 드라마 PD인 량슈선(粱修身) 씨는 "대만의 방송국이 앞으로 이처럼 한국 드라마만 틀면 대만인들이 '우리가 혹시 한국인 후예인가'라고 의심할 것"이라고 꼬집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2년 뒤인 2011년 현재도 당시와 큰 차이는 없다.

이처럼 방송시장 환경이 애초 열악하거나 일시적으로 흔들린 문화권에선 한국 드라마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정상적으로 대중문화시장이 발달한 한국 환경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탄생된 대중문화 콘텐츠는 확실히 여타 아시아 국가에서 경쟁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

노하우도 쌓였고, 안주하지 않고 계속 무한경쟁해가며 게임의 룰을 바꿔나가기까지 한다. 그 박력과 열정과 집중과 무모한 투자는 따라잡고 싶어도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엔 이른바 '땜빵용'처럼 활용되다가도, 한 번 문화적 위화감이 떨쳐지고 나면 바로 시장을 압도해버린다.

●콘텐츠 위력 앞에선 반(反)외세 선동 안 먹힌다

이런 게 바로 글로벌 시장의 무서움이다. 뿌리 깊은 국가·민족적 반감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아니 그런 반감이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대중은 외국 것이더라도 늘 양질의 콘텐츠를 선호하지 애국애족적 마인드로 국산 콘텐츠를 선택하진 않는다.

한국대중문화산업은 오히려 이 같은 글로벌 시장 속성을 먼저 경험해본 바 있다. IMF 외환위기를 맞은 시점인 1998년, "'금모으기 운동'으로 모은 돈이 '타이타닉' 탓에 전부 미국으로 빠져나간다"며 '타이타닉 안 보기 운동'까지 벌인 바 있지만, 결국 '타이타닉'은 당시 한국 최대 흥행기록을 세웠다.

그런 식으론 대중의 욕망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10년 전 UIP 직배 소동까지 더하면, 한국이야말로 콘텐츠 자체의 위력 앞에선 모든 종류의 반(反)외세 선동이 안 먹히는 대중문화시장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일본 혐한세력이 항의 데모를 하건 불시청 운동을 하건, 한국 드라마 자체의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 한류 활로에 큰 영향을 미치긴 어려우리란 전망이다. 독도 문제 터져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300만 명이나 관람한 게 한국시장이듯이, 일본시장 역시 누가 뭐란다고 한국 드라마 안 볼 분위기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다카오카 소스케의 후지TV 비판은 그 타깃설정 면에서 꽤나 엇나갔다는 인상이다. 문제제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오히려 문제제기가 이뤄지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하다. 그러나 대체 어디를, 무엇을 비판해야 할지 감조차 잡고 있지 못하다. 1억3000만 짜리 탄탄한 내수시장에만 안주하다보니 치열한 글로벌 시장 속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후지TV 같은 민영방송사 및 여타 민간사업자의 목적은 애국애족이 아니다. 명확한 이윤추구다. 후지TV의 한국 드라마 과다편성은 이윤추구 측면에서 일본 드라마들이 미덥지 못했기에 비롯됐다.

투자 대비 실적 면에서 당연한 판단이었다. 따라서 다카오카 소스케는, 엄밀히 말하자면, 선도적 대중문화상품을 개발하지 못하는 일본대중문화산업의 문화적 갈라파고스 현상을 비판했어야 옳다. 애꿎은 후지TV 탓만 할 게 아니다.

역으로, 그렇게 남 탓만 하고 있으니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자꾸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의 자폐적, 보호주의적 사고로는 될 것도 안 된다.

일본에서 K-POP 신한류 붐을 일으킨 걸그룹 카라.
일본에서 K-POP 신한류 붐을 일으킨 걸그룹 카라.

●글로벌 경쟁 피하기 시작하면 일본 대중문화산업에 미래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제2차 한류의 핵심인 한국 대중음악, 즉 K팝을 다시 생각해보자. 일본 우익세력은 꾸준히 K팝의 득세에 대해 '한국정부의 음모'니 '국가가 밀어주고 있다느니'하는 음모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음모론이야말로 일본 우익세력의 자폐적, 보호주의적 사고를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K팝이야말로 한국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철저히 경쟁을 통해 자생력을 확보하고 성장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알아서' 살아남고, '알아서' 발전을 거듭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데일리안에 기고한 6월 23일자 칼럼 '장하준 말대로라면 K-POP 한류는 없다'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 중에서 아마도 가장 보호를 덜 받은 산업은 대중가요와 조선 산업일 것이다. 대중가요의 경우 거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일본 가요를 금지하는 정도에서만 보호를 받았지만 가요의 대세라고 할 수 있었던 서양 팝송으로부터는 거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싼 값에 팝송의 무단복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국내가요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유럽에서까지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K-POP의 배후에는 클럽 DJ출신 작곡가들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제한 없이 세계 최고의 곡을 틀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곡들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인을 매료시키기 시작한 K-POP은 세계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빚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제조업과 건설업과 대중가요는 국제수준에 근접했거나 넘어섰다. 이 산업들은 자의든 타의든 일찍부터 국제경쟁에 노출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결국 일본이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시장진입에 대항하기 위해선, 바로 이 같은 점에서부터 사고를 진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1억3000만 내수시장에 안주한 산업과 4800만 내수시장만으론 부족해 해외로 뻗어나갈 궁리만 하던 산업의 차이부터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평생 하던 대로 쟈니스 붙여 드라마 팔고 요시모토흥업 붙여 예능 팔면서, 마르고 닳도록 내수시장만 방어하려는 발상으로는 치열한 글로벌 대중문화시장에 발도 못 들이민다.

답은 언제나 이처럼 단순한데 왜 일본 우익세력은 늘 희한한 부분만 집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상황을 호전시키고자 하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악화시키려 하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다.

다카오카 소스케는 얼마 전 다시 트위터를 통해 배우 커리어를 접을 의향까지 내비친 바 있다. 그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다못해 스시집이라도 하나 차리더라도 바로 옆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불고기 가게가 문을 열어 장사가 안 되기 시작하면 또 다시 "세뇌당하는 것 같다"며 분풀이나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가, 그리고 우익세력이 계속 그런 불만이나 늘어놓고 있는 이상, TV는 더더욱 한류로 그득 차고, 불고기집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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