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안현진] 수사물의 클래식 ‘블루 블러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7일 1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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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블러드\' 포스터. 왼쪽부터 셋째 제이미, 아버지 프랭크, 장남 대니, 그리고 에린.
\'블루 블러드\' 포스터. 왼쪽부터 셋째 제이미, 아버지 프랭크, 장남 대니, 그리고 에린.

"태양 아래 새로운 것 없다"라는 말이 있다. 기원 전 고대 로마의 유적에서 발견된 문구라고 하는데, 참신한 사고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말이다. 내 경우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들은 듯한 이야기를 만날 때 이 말이 떠오른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구나, 라는 한탄이 함께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참신함이 주변에 드물고, 그래서 새로운 것이 무엇보다 환영 받는 시대가 된 것도 같다.

하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우리 옛말과,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새로운 게 나와도 역시 옛날 게 좋다)"라는 서양 속담이 생긴 데는 이유가 있을 터. 비슷비슷한 이야기 속에서도 발견할 미덕은 있다.

뻔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고전이, '클래식'으로 추켜올려지는 이유는 보편적인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담아냈기 때문이고, 아무리 두루 알려진 이야기라고 해도 '누가'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미국의 TV시리즈 '블루 블러드'는 굳이 따지자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를 좋은 배우를 활용해 만들어낸 정통 '웰메이드' 드라마다.

▶ 시민에 봉사하는 경찰의 '푸른 피'가 흐르는 레이건 가(家)

'블루 블러드'는 3대가 경찰과 검사 등 뉴욕 법 집행기관에 봉사하는 레이건 가(家)의 이야기다. 왼쪽부터 제이미, 헨리(할아버지), 프랭크(아버지), 에린, 대니.
'블루 블러드'는 3대가 경찰과 검사 등 뉴욕 법 집행기관에 봉사하는 레이건 가(家)의 이야기다. 왼쪽부터 제이미, 헨리(할아버지), 프랭크(아버지), 에린, 대니.

'블루 블러드'는 이 칼럼을 통해 '죽음의 시즌'이라고 소개한 바 있는 2010년 가을 시즌에 데뷔한 CBS의 경찰수사물이다.

CBS는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 '멘탈리스트' '크리미널 마인드' 등의 수사물로 명성을 얻은 미국의 공중파 네트워크로 '블루 블러드'는 기본적으로 수사물을 애호하는 시청자를 둔 방송국 덕분에 '죽음의 시즌'에서도 살아남은 손에 꼽히는 몇몇 드라마 중 하나로 남았다.

고전, 클래식을 운운하며 시작했지만, '블루 블러드'는 "어디서 본 듯한"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인 '기시감' 혹은 '데자뷰' 아니면 뻔하다는 의미의 '클리셰'로 설명될 TV시리즈다.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혐의는 우선 이 드라마가 경찰, 형사가 등장해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물 형식을 차용했다는 점에 둘 수 있겠다. 에피소드의 서막은 종종 범죄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사건 현장에 경찰이 출동하고 '출입금지'를 외치는 폴리스라인이 둘러지면 형사가 등장해 유쾌하지 않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본다. 수사물의 팬이라면, 눈 감고도 그려낼 장면이다 보니 조금은 식상하다.

하지만 '블루 블러드'가 시청자에게 지나치게 친숙한 느낌을 줬다면, 그 이유는 수사물이라서가 아니라 가족드라마라는 또 다른 장르 때문이다. '블루 블러드'의 주인공들은 '레이건'이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가족이다. 할아버지 헨리는 뉴욕시 경찰청장으로 은퇴했고, 아버지 프랭크(톰 셀렉)는 뉴욕시의 현 경찰청장이다.

큰 아들 대니(도니 왈버그)는 뉴욕 경찰국 소속 형사이고, 둘째인 딸 에린(브리짓 모이내한)은 맨해튼 지방검사 사무실에서 검사보로 일한다. 셋째 역시 경찰이었으나 근무 중 부상을 당해 순직했고, 넷째 제이미(윌 에스테)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형의 죽음 뒤 핏줄에 흐르는 '푸른 피'를 거스르지 못하고 경찰학교에 지원해 이제 막 정복을 입었다.

▶ 경찰드라마, 가족드라마, 미스터리의 팬이라면 1타3피

레이건 가(家)는 일요일 저녁 모두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 전통이 있다. 가족이 모이는 자리지만 논쟁의 장이 되기도 한다. 사진은 대니와 대니의 부인.
레이건 가(家)는 일요일 저녁 모두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 전통이 있다. 가족이 모이는 자리지만 논쟁의 장이 되기도 한다. 사진은 대니와 대니의 부인.

이 경찰 가족은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한 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는다. 보통은 헨리와 프랭크, 대니의 가족, 에린(이혼해서 남편은 오지 않는다)과 에린의 딸 니키, 제이미까지 4대가 매주 일요일 저녁 테이블에 모이고, 많을 때는 제이미의 약혼녀인 시드니까지 참석해 10명이 커다란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이 담긴 접시를 돌리며 담소를 나눈다.

레이건 가의 주말 저녁식탁은 일견 단란한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담아낸 듯 하지만, 곧 이 드라마가 순순히 기대한 것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단면을 드러낸다. 'USA투데이'가 "'블루 블러드' 중 최고의 장면"으로, 'LA타임즈'가 "일요일 저녁식사처럼 모두를 위한 장면"이라고 설명한 이 식사 장면은 법 집행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한솥밥을 먹게 하면서 흥미로운 대화를 그려낸다.

10명 중 미성년자 3명을 제외한 7명 중 3명이 현역 경찰이고, 1명은 검사다 보니 논쟁거리야 충분하다. 검사와 경찰, 형사, 경찰청장, 변호사(제이미와 제이미의 약혼녀 시드니)까지 모두 모인 테이블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서부터 가족사, 경찰 윤리 등 논쟁적이고 유쾌하지만은 않은 주제들이 오가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이 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형제 중 유일한 홍일점이자 검사인 에린이다. 에린은 경찰인 남자형제들의 의견에 종종 반기를 들어 경찰 수사 과정의 적법성, 윤리문제 등을 꼬집는다. 에린은 '블루 블러드'에서 그저 성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캐릭터가 아니라 편향되지 않은 드라마를 만드는 무게중심이다.

또 한가지, '블루 블러드'를 참신하게 하는 요소는, 경찰 수사물, 가족드라마라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굵직한 장르적 줄거리 아래로 서서히 드러나는 미스터리적인 서브플롯(부수적 줄거리) 때문이다.

'블루 블러드'는 제이미가 폴리스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뉴욕 시는 여러분이 있어 안심합니다"라는 아버지 경찰청장의 격려로 시작한 첫날에 제이미에게 FBI요원이 접근해 오는데, 근무 중 세상을 떠난 형 조의 죽음 뒤에는 '푸른 기사단'이라고 불리는 경찰 내 부패한 조직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FBI는 조와 함께 '푸른 기사단'을 조사하던 중 조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며 제이미에게 "형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와 경찰 내부의 부패에 대해서 조의 뒤를 이어 조사를 계속해 줄 것"을 부탁한다.

▶ 도니 왈버그와 톰 셀렉의 호연에 호평

이 드라마의 '클래식'한 약점을 보완하는 강력한 완충제는 배우들이다. 특히 시청자와 평단은 톰 셀렉과 도니 왈버그가 연기하는 아버지 프랭크 레이건과 장남인 대니 레이건의 캐스팅에 호응과 갈채를 보내고 있다.

도니 왈버그는 국내에도 엄청난 팬덤을 형성했던 미국의 팝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의 멤버였으며 영화배우 마크 왈버그의 형이기도 한데, '밴드 오브 브라더스'(HBO)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경력을 확고히 했으며 '리졸리와 아일즈'(TNT)에 이어 '블루 블러드'에서도 형사로 출연하며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또 인상적인 두툼한 콧수염을 젊은 시절부터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배우 톰 셀렉은 '블루 블러드'의 일등공신이다.

셀렉이 연기하는 프랭크는 '말 수는 적고 행동은 뚜렷한' 남자다운 남자이자 아버지다운 아버지다. 한국에서 셀렉은 1987년 코미디 영화 '뉴욕 세 남자와 아기'의 주인공으로 알려졌을 텐데 그 영화에서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를 걷어내고 점잖은 중년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맞겠다.

그는 간간히 CBS의 단막극을 통해 경찰로서의 이미지를 다져왔는데, '블루 블러드'에서의 강인한 아버지이자 심지 굳은 경찰청장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정의 수호와 범죄 척결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힌 셈이다.

또 '뉴욕 세 남자와 아기'의 속편 격인 '스리멘 앤 어 브라이드(Three Men and a Bride)'가 2012년 제작될 것이라는 루머도 도는 중이다. 25년 뒤 숙녀로 자라나 결혼을 준비하는 아기 바구니 속 아기와 아버지들이라니, 궁금하고 또 기대된다.

안현진 잡식성 미드매니아 joey04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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