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안현진]함께 있어 행복한 ‘커뮤니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3일 14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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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의 등장인물들. 맨 앞 중앙부터 시계방향으로 윙거, 브리타, 셜레, 아벳, 이안 듀컨 교수, 애니, 피어스, 트로이.
\'커뮤니티\'의 등장인물들. 맨 앞 중앙부터 시계방향으로 윙거, 브리타, 셜레, 아벳, 이안 듀컨 교수, 애니, 피어스, 트로이.
미국 TV시리즈, 특히 미국드라마는 할로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시간적 배경을 적절하게 드라마 속에 녹여내는 재주가 있다. 예를 들면 할로윈에는 할로윈에 어울리는 기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의 범죄가 수사물에 등장하고, 이 코너를 통해 소개한 적 있는 '아웃소스드'는 뭄바이에서 보내는 미국식 추수감사절에 대해 이야기를 꾸몄다.

크리스마스야 말로 한해를 장식하는 대미 중에 하나이니 놓쳤을 리 없다. 'CSI: 과학수사대' '멘탈리스트' 등의 수사물들은 산타클로스를 곳곳에 등장시켰고, '글리'는 에피소드 한 편을 크리스마스 캐롤만을 부르며 연말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NBC'의 '커뮤니티'는 개인적으로 2010년 가장 눈에 띄는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 TV시리즈다.

'커뮤니티'는 2009년 가을 첫 시즌을 출항한 시츄에이션 코미디다. 2009년 가을은 '모던 패밀리' '굿 와이프' '글리' '쿠거타운' 'NCIS: 로스앤젤레스' 등 인기작이 유난히 많았던 유례없는 시즌이었다. 그래서 내게 '커뮤니티'는 조금은 뒷전이었고, 시즌1이 끝난 뒤 'NBC'에서 '커뮤니티'의 시즌2를 방영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읽었을 때 다소 의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커뮤니티'는 내게 ''프렌즈'의 인기를 이어보려는 'NBC'의 다소 뻔한 시도'처럼 느껴졌다. '프렌즈'가 뉴욕을 배경으로 (모두 백인인) 남자 셋 여자 셋을 시트콤에 중심에 놓았다면, '커뮤니티'는 콜럼비아의 한 커뮤니티 컬리지(한국의 2년제 대학과 유사한 교육과정)에 모인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입학동기 7명을 그 중심에 놓았기 때문이다. 매번 다른 에피소드로 티격태격 사건이 벌어지는 모양새가 그저 '프렌즈'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다양한 스펙트럼이 녹아든 등장인물

'커뮤니티'의 주인공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그린데일'이라는 소우주의 중심에는 전직 변호사 출신의 이기적이고 기고만장하고 잘생긴 남자 제프 윙거가 있다. 윙거는 미국의 콜럼비아가 아닌 남미의 콜럼비아에 있는 로스쿨을 졸업했다는 익명의 제보 때문에 변호사 협회로부터 변호사 자격증을 박탈당한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로스쿨 준비를 해서 빠르게 졸업장을 따는 수밖에 없기에 그는 친구가 교수로 있는 그린데일 커뮤니티 컬리지를 선택했다. 윙거는 스페인어 수업에서 브리타라는 여학생을 만나는데 한눈에 반해 브리타와 친해지려고 스페인어 스터디 클럽을 만든다.

클럽 멤버는 윙거(백인)와 윙거의 작업 계획을 꿰뚫어 본 브리타(백인), 이혼 뒤 새 인생을 찾아보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아줌마 셜리(흑인), 화장실 휴지 회사를 운영하는 노년의 재벌 피어스(백인),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트로이(흑인)와 트로이를 예전부터 좋아했지만 고백한 적 없는 그리고 약물 중독인 애니(백인), TV속 세상과 현실을 분리하지 못하는 영화광 아벳(인도인) 등 7명이다. 여기에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세뇨르 챙(중국인, 실제로는 한국계 미국인인 벤 정이 연기한다)과 윙거의 친구인 이안 듀컨(영국인), 그리고 커뮤니티 컬리지의 학장인 펠튼(백인, 동성연애자임이 암시된다)이 학사일정대로 흘러가는 에피소드들에 등장하며 이야기의 살을 붙인다.

▶TV, 영화, 대중문화에 대한 자유롭고 영리한 패러디

이렇게 등장인물의 구성만 보아도, 백인 여섯이 등장해 심각한 고민 없이 누가 누굴 좋아하는 지에 대해서 고민했던 '프렌즈'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많이 고려한 모양새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프렌즈' 및 다른 TV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100년이 넘어간 영화의 역사, 반세기를 넘긴 텔레비전의 역사 등 대중문화를 에피소드의 소재로 적극적으로 끌어 안았다는 점이다. 종교, 섹스 등 논쟁적인 소재도 거리낌 없이 가져다 쓰는 대담함은 물론이고 종교나 섹스를 다룬 TV프로그램, 영화 등이 절묘하게 비평의 소재로 둔갑한다.

한 에피소드를 예로 들어보자. '패스트 & 퓨리어스'의 감독 저스틴 린이 특별 연출을 맡았던 이 에피소드는 "수강신청우선권"을 상품으로 건 페인트볼 시합을 보여준다. 커뮤니티 컬리지의 학생들은 저마다 팀을 이뤄 페인트볼 시합을 시작한다. 7명의 스터디그룹은 처음엔 팀이 되어 활약하지만 곧 승자는 한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를 경계한다. '매트릭스' '다이 하드' '영웅본색' '터미네이터' 등 총격 장면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영화의 장면들이 패러디된다.

이런 패러디는 학교식당에서 판매하는 닭튀김을 두고 벌어지는 학생들간의 암투를 폭력조직의 확장 세력과 암투에 대입해 마피아영화처럼 그려지기도 했고, 할로윈 파티에 준비한 상한 음식을 먹고 모두 좀비로 변해 서로를 공격하는 이야기를 통해 좀비영화로도 탈바꿈 됐다. 아벳이 만드는 종교에 관한 영화를 두고 벌어지는 바이럴(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는) 캠페인과 그 허상을 포착해 21세기 미디어 마케팅의 진실과 거짓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아벳의 통제할 수 없는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는 한 회가 통째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아벳의 통제할 수 없는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는 한 회가 통째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크리스마스 스페셜 에피소드

하지만 역시 최고는 시즌2의 11째 에피소드인 '아벳의 통제할 수 없는 크리스마스'다. 30분이 채 안되기는 하지만, 에피소드 한편을 통째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크리스마스 특별 에피소드였는데, 매년 크리스마스에 아벳을 찾아오던 (이혼한) 엄마가 찾아오지 않게 된 사건을 통해서 아벳이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다.

이 에피소드의 진가는 심리학 교수 듀컨이 아벳의 심리를 들여다보자며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찾아 '윈터 원더랜드'로 마법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고, 함께하기로 한 등장인물들이 '잭 인 더 박스(상자를 열면 스프링 인형이 튀어나오는 장난감)', 로보트, 아기 인형, 테디 베어, 발레리나, 병정 등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동화 속 장난감 캐릭터로 변신하는데 있다. (아래 그림 참고) 특히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크리스마스를 꿈꾸는 마음 자체에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있다는 결론은, 어떻게든 크리스마스와 배경적으로 얽어 보려는 다른 TV시리즈들과는 다르게 긍정적인 메시지까지 전달했다.

'커뮤니티'의 제작자 댄 하먼은 학창 시절 여자친구와 같이 있고 싶어서 만들었던 스터디 그룹의 친구들과 쌓았던 우정의 경험이 '커뮤니티'를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라고는, TV라고는 모르는 사람들이 내 인생으로 들어왔고, 어느 순간 나 역시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나 역시 처음과 다르게 가랑비에 옷 젖듯 '커뮤니티'의 등장인물들이 천천히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동갑내기에 나날이 예뻐지는 여자 친구들로 가득했던 나의 대학시절을 되돌아보면 더 그렇다. 성적에 대한 경쟁, 외모에 대한 경쟁, 나중에는 취업에 대한 경쟁으로 이어졌던 4년의 시간이 그래도 항상 그리운 것은 나에게도 '커뮤니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커뮤니티'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면, 그 자체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기쁨이다.

안현진 잡식성 미드 마니아 joey04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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