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이 미래 파워]<中>창업선진국 다양한 ‘에인절투자’

동아일보 입력 2010-10-13 03:00수정 2010-10-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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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는 대학 - 재단이 ‘코치’… 핀란드는 정부 - 대기업과 ‘동업’
리스크에 도전하는 나라엔 든든한 ‘천사’가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경영대학원의 벤처창업프로그램(LTV)은 UNC 재학생이면 누구나 수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교수나 교직원들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제약 조건은 최소 2명 이상으로 팀을 이뤄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 덕에 LTV 강의실은 10대 후반 학부생부터 20대 대학원생, 30, 40대 교직원, 50대 교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진은 패트릭 버넌 교수(왼쪽)가 진행하는 2010년 LTV 첫 학기 프로그램인 ‘사업 기회 인식’ 수업 모습이다. 채플힐(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21세기는 창의성이 중시되는 지식경제시대다. 과거처럼 단순히 생산성만 높여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가정신이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핵심 경쟁력이다. 동아일보 기업가정신센터와 딜로이트 컨설팅의 기업가정신 경쟁력 평가에서 가장 앞선 미국과 북유럽 국가 중 대표적 혁신 국가로 꼽히는 핀란드, 동아시아의 강소국인 싱가포르의 생생한 기업가정신 육성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28세 청년, 컨설턴트 취업 마다하고 ‘주문형 시리얼’ 창업해 승승장구

미국에서 창업한 독일인 청년 사업가 하요 엔겔케 커스텀초이스시리얼 대표는 “5년 안에 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게 목표”라며 환하게 웃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럼에 있는 커스텀초이스시리얼의 대표 하요 엔겔케 씨(28)는 독일에서 나고 자란 청년 사업가다. 2007년 MBA(경영학석사) 취득을 위해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UNC) 경영대학원으로 유학 온 그는, 2009년 5월 졸업과 동시에 주문형 글루텐-프리 시리얼(밀, 보리 등 곡류에 존재하는 불용성 단백질인 글루텐이 들어 있지 않은 시리얼) 회사를 창업했다.

엔겔케 대표는 미국에 오기 전 약 3년간 독일 도이체은행에서 일했고, MBA 과정 중간에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BCG에서 인턴십을 마친 후 정식 채용 통보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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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BCG 인턴 후 2학년 때 ‘벤처창업프로그램(LTV·Launching The Venture)’을 들으며 창업을 결심했다. “아직 미혼이고, 부양가족도 없는 지금이 도전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판단했다”는 엔겔케 대표는 “비자 문제처럼 까다로운 문제가 있긴 했지만 비즈니스와 관련해 그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관료주의가 없다는 게 미국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엔겔케 대표가 세운 커스텀초이스시리얼은 지금까지 LTV를 통해 탄생한 125개 기업 중 하나다. 올해로 5년째를 맞는 LTV는 UNC 경영대학원에서 진행하는 1년짜리 커리큘럼이다. 학기마다 △사업 기회 인식 △타당성 △사업 계획 수립 △자금 조달 등 4가지 주제를 하나씩 거치면서 학생들(팀 단위로 수강 등록)이 실제 창업에 이르도록 도와준다.

특이한 점은 창업 및 기업운영 관련 전문가 3, 4명이 LTV 수강팀과 짝을 이뤄 상담해 주는 ‘코칭’ 제도다.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기업가, 컨설턴트, 벤처캐피털리스트, 법률가 등 자원봉사자로 나선 코치들은 1년 내내 LTV 수업 시간에 참석해 학생들에게 조언해 준다. 엔겔케 대표도 글루텐-프리 피자 레스토랑을 하는 기업가를 코치로 둬 창업에 큰 도움을 받았다.

LTV 총책임자인 테드 졸러 UNC 경영대학원 교수는 “창업을 활성화하려면 우선 ‘기업가적 생태계(entrepreneurial ecosystem)’를 조성해야 한다”며 “기존 기업가들과 창업을 꿈꾸는 잠재 기업가들, 이들을 돕는 벤처캐피털리스트 등 창업 활동과 관련된 이들이 가능한 한 서로 많이 연결되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UNC가 LTV를 시작한 데는 미국 기업가정신 관련 최대 비영리 단체인 카우프먼재단의 대학 지원 프로그램 ‘카우프먼 캠퍼스’가 계기가 됐다. 카우프먼재단은 대학 캠퍼스 전체에 기업가적 마인드를 불어넣고, 더 나아가 지역 사회로 기업가정신을 확산하는 데 대학이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2003년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카우프먼재단은 총 18개 대학을 선정해 이들 대학에 매칭 펀드(1 대 1∼1 대 5) 투자를 조건으로 총 43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수혜 대학이 이에 대해 내놓은 투자금액은 총 2억 달러다. 존 코어틴 카우프먼 재단 부사장은 “기업가정신에 불씨를 지필 수 있는 최소 자금만을 지원해 투자금액의 승수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며 “대학 스스로 지속 가능한 기업가정신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더럼=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핀란드]22세 디자이너, 창업하려 사표 내미니 회사가 되레 “투자하겠다”

핀란드 소셜게임업체인 술라케의 오우티헨리크손 최고재무책임자.
1999년 핀란드의 게임회사 직원이었던 삼포 카자라이넨. 22세였던 그는 친구와 취미 삼아 사이트를 만들었다. 온라인에 동시 접속한 사용자들이 아바타로 눈싸움하는 방식이었다. 소셜네트워킹 사이트가 없던 시절이라 큰 인기를 끌었다.

핀란드 광고사인 타이바스는 이들을 눈여겨보고 채용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내 창업 의사를 전달했다. 타이바스는 흔쾌히 창업 자금을 지원해 주주로서 ‘지원군’이 됐다. 문제는 기술 개발. 이번엔 핀란드 창업·혁신 지원기관인 국립기술청(Tekes)이 나섰다. 자금 지원은 물론이고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교류 주선까지 해줬다. 덕분에 이들은 기술 플랫폼을 개발해 사용자들 간 아바타 아이템을 판매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소셜게임업체 ‘술라케(Sulake)’가 본궤도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친구 2명이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12개 해외 지사에 직원이 270여 명에 이르는 ‘글로벌 벤처기업’으로 거듭났다. 연매출도 4900만 유로(약 770억 원·2009년)나 된다.

기업가정신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핀란드에서 Tekes의 역할은 크다. 지난해 2177개 프로젝트에 5억7900만 유로를 투자했다. Tekes는 단순한 자금 지원에서 벗어나 대학, 연구기관, 대기업, 투자자, 지방정부 등을 창업자와 연결해주는 ‘창업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오우티 헨리크손 술라케 최고재무책임자는 “기업과 정부 모두 술라케의 아이디어만 보고 기꺼이 투자했다”며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술라케는 없다”고 말했다.

창업 기업 육성을 위해 Tekes가 협력하는 대상은 광범위하다. 중소기업과 협업을 한다면 심지어 대기업도 지원대상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키아다. Tekes는 노키아에 매년 1000만 유로를 지원한다. 일부에선 ‘글로벌기업인 노키아에 나랏돈을 왜 주느냐’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라이네 헤르만스 Tekes 영향분석 디렉터는 “노키아는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주체(cluster-driver)”라며 “수많은 공급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지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노키아는 자사 전략과 부합하면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신규 기업에 집중 투자해 자신의 회사처럼 활용한다.

Tekes는 창업 기업을 지원할 때 학술적인 성과보다도 상업화 가능성을 더 중시한다. 지원 결과 기대되는 수익에 대한 시뮬레이션 분석은 기본. 영향분석(Impact Analysis)팀을 두고 연구 관리자, 기술 자문가, 선임자문가, 프로그램 관리자 등이 자금 지원 시 기대되는 효과에 대해 다각도로 평가해 투자수익률을 높인다.

그렇다고 당장 성공하는 프로젝트에만 지원하는 건 아니다. Tekes는 창업 리스크를 기업과 함께 진다. 시장 성숙까지 오래 걸릴 것 같으면 보조금을 지급한다. 단, 모럴해저드를 막기 위해 해당 기업도 투자금을 최대 50% 내게 한다. 시장이 빨리 무르익을 것으로 예상되면 저리 대출을 해주되, 사업이 실패하면 이 자금은 지원금으로 전환한다. 기업가가 실패해도 재기(再起)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헬싱키=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싱가포르]전문가 네트워크가 아이디어 평가… 정부와 ‘1 대 1 매칭투자’

웡포캄 교수는 기업가정신 교육 및 혁신 전략 관련 아시아 대표 경영학자다. 현재 NUS 기업가정신센터 디렉터를 겸임하고 있다.
웡포캄 싱가포르국립대(NUS) 경영대 교수는 “지역 중소기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싱가포르 경제의 미래는 없다”며 “이런 점에서 싱가포르 경제성장의 요체는 기업가정신”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기업가정신 육성과 관련해 한국과 싱가포르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장 큰 문제는 창업 초기 단계에서 투자자금 확보가 어렵다는 것. 웡 교수는 “벤처 캐피털도 제3자의 돈으로 운영되는 이상, 투자 위험이 큰 창업 초기 단계의 기업에 투자하기는 근본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그는 2001년 자신이 창립한 ‘비즈니스 에인절 네트워크(BAN)’를 소개했다. 성공한 기업인이나 은퇴한 벤처 캐피털리스트, 자본가 등이 주요 회원으로, 자신이 잘 아는 전문 산업 분야의 창업 아이디어를 평가해 자신의 돈을 직접 투자한다. 이때 정부도 개인 투자 몫만큼 일대일 매칭 투자한다. 개인투자자들은 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5년 안에 정부 지분을 1.5배 가격으로 되살 수 있다. 지금까지 BAN을 통해 투자를 받은 기업은 총 200여 개에 이른다.

웡 교수는 가업 승계 기업의 기업가정신 활성화도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NUS는 창업주 2, 3세대 학생들을 미국 실리콘밸리 등지의 초기 벤처 기업에 1년간 인턴으로 보내 자연스럽게 기업가정신을 몸에 익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말이나 야간 등 자투리 시간에는 인근 대학에서 학업을 병행하도록 해 기업가정신에 필요한 소양을 두루 익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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