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직위 - 측근 교통정리 ‘각본’ 틀어졌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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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자회 돌연 연기 왜정치국 상무위원 임명 놓고 김정일, 결정 못했을 가능성

북한이 노동당 최고 지도기관인 당 대표자회를 돌연 연기한 것은 북한 내부에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입증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수해는 외부에 대한 명분일 뿐 최고지도자의 판단이 오락가락하거나 승진 자리를 놓고 엘리트 내부에 권력투쟁이 일어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김정일 김정은 판단 오락가락?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 회의를 통해 3남 김정은의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대규모 엘리트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특히 김정은을 요직에 앉히고 이를 공개함으로써 후계자를 공식화하거나 장성택 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 부위원장을 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으로 승진시켜 김정은 후계체제가 완성될 때까지 과도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도록 할 것으로 관측됐다.

따라서 당 대표자회가 북한 스스로 예고한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15일까지 열리지 못한 것은 이런 중요한 쟁점에 대해 김 위원장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거나 내렸던 결정을 계속 뒤집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승열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정은의 공직을 ‘1974년 룰’에 따라 줄 것인지, ‘1980년 룰’에 따라 줄 것인지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번 회의에서 김정은에게 김 위원장이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될 때의 직책인 당 중앙위 정치위원과 당 중앙위 비서 등의 자리까지만 주느냐, 아니면 1980년 후계자로서 당 대회라는 공식 무대에 나타날 때 받은 직책인 정치국 상무위원 등의 자리까지 주느냐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뇌혈관계 질환의 후유증 때문에 중요 현안에 분명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또 김정은 관련 인사뿐만 아니라 당 조직 개편과 핵심 요직 인사 등에 대해 김정일과 김정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 권력 엘리트들의 권력투쟁설


한 정부 관계자는 “장성택 오극렬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등 김 위원장의 핵심 측근들이 서로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차지하겠다거나 자신의 측근을 더 중요한 자리에 앉히기 위해 물밑 다툼을 벌이고 있을 수 있다”며 “김 위원장도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회의 개막을 늦추면서 인사안을 계속 새로 짜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회의를 앞두고 북한 엘리트 사이에서는 ‘이번 인사에서 노동당 요직을 차지하거나 김정은 밑에 줄을 서지 못하면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미 요직이 확정된 이들에 대해 각종 개인비리를 지도부에 폭로하거나 경쟁자의 측근 대신 자신의 측근을 기용해 달라는 인사 청탁이 당 지도부에 빗발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당 대회나 대표자회를 30년 만에 처음 열다 보니 의사일정이 지도부의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 대표자회의 연기를 둘러싼 북한의 내홍이 북한 정치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국자는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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