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안현진] 에미상 골든글로브상을 3년 연속 휩쓴 ‘매드맨’

동아일보 입력 2010-09-14 12:50수정 2014-08-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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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맨'의 세계는 남녀로 나뉜다. 큰일을 주관하는 수트 속 남자(위)들과 그 뒤에서 바삐 움직이고 소문을 전하는 여자들. 모두 심각한 끽연가들이다.


8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노키아 극장에서 열린 제62회 프라임타임 에미 시상식은 '매드맨'과 '모던 패밀리'의 잔치였다. 두 TV시리즈가 각각 드라마와 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AMC의 '매드맨'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드라마작품상 3연패를 기록함과 동시에 올해 1월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TV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3년 연속 수상해 명실공히 (2008년부터) 2010년(까지)의 TV드라마로서 인정받은 셈이다.

2007년 첫 방영을 시작하면서 그 해의 드라마로 떠오른 뒤 시즌4로 이어지는 동안 3년 연속 왕좌를 내주지 않은 이 드라마는, 한 남자의 인생과 그 남자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다.

"시즌4라니요, 우리는, 아니 나는 정말 시즌1의 절반도 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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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맨'의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매튜 와이너가 2010년 에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뒤 꺼낸 소감 중 한마디다. 시종일관 진중한 분위기로 진행하는 드라마인데다가, 그다지 멀지 않은,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도 않은 1960년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은 탓에, 제작자 역시 '매드맨'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듯 하다.

와이너는 2001년 처음 '매드맨' 파일럿의 각본을 썼다. 그 뒤 '소프라노스'의 작가로 발탁되어 HBO와 쇼타임 등 프리미엄 케이블 채널을 오가며 '매드맨'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를 삼고초려했다는 일화를 고려하면 오리지널 시리즈는 만든 적도 없는 채널 AMC에서 '매드맨'을 제작, 방영하기로 했을 때 와이너가 느꼈을 희비 역시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매드맨' 시즌3 시작 당시 AMC에서 공개한 이미지컷. 사무실 의자에 앉아 물 속으로 가라앉는 도널드 드레이퍼.


▶스스로 자신을 지운 남자가 찾을 수 없는 안식처

'매드맨'의 배경은 1960년대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위치한 스털링&쿠퍼라는 광고기획사다. '매드맨'(Mad Men)이라는 제목은 그 당시 매디슨 애비뉴(Madison Avenue)에 밀집한 광고회사(Advertising Company)에서 일하던 남자들을 일컬었던 속어로, 여기서는 주인공인 도널드 드레이퍼(존 햄)와 그 주변인물의 직업을 말한다. 드레이퍼는 성공한 광고기획자다. 굵직하고 통찰력 있는 광고 문구로 클라이언트는 물론 소비자의 마음을 주무르는 재주도 지녔지만, 무엇보다 그가 성공한 이유는 비밀스러운 매력에 있다. 서늘한 그의 시선은 마음이라도 꿰뚫듯 날카롭고, 늘 굳게 다물어진 입술은 빈틈이 없다.

그는 조각상 같은 미남이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서 있으면 이마 하나는 위로 튀어나와있을 정도로 키가 크다. 부하직원들은 그를 경외하고, 상사나 직장 동료는 그를 질시하면서도 아낀다. 드레이퍼와 마음이 마주친 여자들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그는 드러내놓고 지배적이면서 묘하게 순종적인 동시에 모성본능을 자극한다. 위스키 잔을 감아 쥔 커다란 손,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콧날, 긴 하관, 푸르게 돋아나는 면도칼이 지나간 자리까지, 드레이퍼는 전통적인 남성성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그에게는 10여년을 함께한 아름다운 부인이 있고 세 아이가 있다. 성공한 사회생활, 유복한 가정생활, 매력적이되 거추장스럽지 않은 정부들까지. 일견 성공대로를 달리는 듯한 드레이퍼에게는 그러나, 쉽게 꺼내놓지 못하는, 그래서 시대와 공유할 수밖에 없는 비밀이 많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다져진 듯한 몸은 사실 마구간에서 고되게 일했던 가난한 소년이 이룩한 신전이고, 과거를 알 수 없는 비밀스러움은 그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에 자기의 진짜 이름을 버리고 텐트를 나누어 쓰던, 그러나 폭격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진짜 도널드 드레이퍼의 군번줄을 가져가면서 시작되었다. 드레이퍼가 되기 이전의 그에게 아무것도 없는 이유는, 창녀로부터 태어나 버림받고 업둥이로 자라 학교 대신 가죽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과거를 한국을 떠나며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도널드 드레이퍼는, 자기 삶에서 도망치고 싶던 한 남자가 어렵게 만들어낸 이상적 자아다. 하지만 그는 그 자아에게서조차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는 소리 없이 그의 뒤를 따라붙는다. 스스로 자신을 지워버린 남자는 그렇게 계속해서 도망치고 그런 그에게 안식이란 맛볼 수 없는 사치다.

패션지 \'베니티 페어\'는 \'매드맨\'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기도 했다.


▶1960년대의 미국을 다면적으로 관통하는 시대극

캐릭터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틱한 '매드맨'은 드레이퍼라는 베일에 싸인 인물을 한 겹씩 벗겨냄과 동시에 그가 사는 시대의 면면을 세련되게 드러냄으로써 정교한 구성을 자랑해왔다. 흔히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줄임말로, 미국을 구성하는 여러 인구구성 중 앵글로색슨계 백인 지배계급을 일컫는다)로 대변되는 1960년대의 미국 사회를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이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에게 바치는 오마쥬라는 드라마의 오프닝은 물론, 세트에서 촬영됐지만 촬영방식이나 만듦새에 있어서도 클래식을 지향한 덕분에 '매드맨'이 전달하는 비주얼과 분위기는 보는 이를 그 시간 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의상,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이 마법에 힘을 보태고, 더 훌륭할 수 없는 캐스팅이 더해져 연기는 앙상블을 이룬다.

베트남전 종식,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TV 대중화 등 역사적인 사건과 패러다임의 변화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달려온 '매드맨'은 그런 굵직한 변화들 앞에서 도널드 드레이퍼라는 개인과 그 주변인물들이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를 세심하게 스케치했다. '매드맨'을 시대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달리 없다. 야망에 찬 사업가형 남자들이 벌이는 암투와 권모술수, 과거를 숨긴 주인공의 성쇠를 중심에 둔 기업드라마로서의 면모는 차치하고도, 몇몇 여성캐릭터가 제기하는 여성인권문제, 불륜, 외도, 이혼, 동성애, 반유대주의 등 제도에서 인정하고 수용하기를 거부했던 여러 가지 이슈를 등장시켜 현재와 끊임없이 비교하고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영리하게 되묻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절, 가질 수 없어 더 애틋한 낭만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 오래된 것이 좋은 것, 이라는 이 표현에는 흘러간 날들에 대한 향수, 동경, 선망이 어린다. 모든 것이 복잡해진 지금과는 달랐던, 많은 것이 단순하고 명쾌했던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라고 하면 맞을까? '매드맨'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심상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향한 향수와 동경이다. 딱 떨어지는 수트를 입고 시종일관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 숨 막히기는커녕 자욱한 안개 속을 서성이는 기분이 든다. 그 어떤 순간을 정지시켜 사진으로 꺼내온다고 해도 오늘을 사는 우리가 맛볼 수 없는 조각에 불과하겠지만, '매드맨'을 보면서 경험한 적 없는 노스탤지어 속에 빠지는 건, 그 시절의 공기였고, 그 시절의 풍경이었던, 그 가질 수 없는 낭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낭만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지금 이 시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분명 있을 것이다.

안현진 잡식성 미드 마니아 joey04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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