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북스] 아시아를 여행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절반만 여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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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일 11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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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처음 만나는 아시아'의 저자 안진헌
●차 향기 은은한 '다르질링'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루앙프라방'까지…
●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이토록 아름다운 아시아'

이제 해외출장이나 해외여행은 보편적인 일상이 됐다.

해외여행 출국자가 3000명도 채 안되던 시절(1985년)이 불과 25년 전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5년에는 1000만 명을, 2009년에는 2000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적인 성장이 있었다. 초등학생 수학여행지로 중국의 고대도시 시안(西安)이 선뜻 선택될 정도다.

이제 여행자들의 관심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여행하고 오느냐이다. 그저 유명한 관광지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와 역사를 만나고 새로운 나와 마주하는 사색 여행으로 진화한 것이다.

평범한 제주여행을 '걷기 여행'이란 컨셉트로 재해석한 '올레길' 열풍이나, 지구 반대편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날아가 한 달 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는 여행자들의 급증이 이 같은 변화를 나타낸다.

■ 이제는 '슬로우 트래블'이 대세

혹자는 관광버스를 대절해 속성으로 핵심지역만을 둘러보는 '패키지여행'과 비교해 이를 '슬로우 트래블(Slow Trave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큐멘터리로 인기를 모았던 '차마고도'나 '누들로드'의 폭발적인 열풍 또한 이 같은 '슬로우 트래블' 트렌드에 속한다.

하지만 아직도 깨어지지 않은 강고한 편견 하나가 남아 있다. 바로 '아시아 경시' 풍조이다. '아시아 여행'이란 '가난하고 지저분하지만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것'이라는 편견이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이기 때문인지 눈에 익숙한 '검은 머리'와 서울에서 1시간만 차를 몰고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쌀농사'짓는 풍경을 여행지에서까지 보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들은 동유럽의 해바라기 밭이나, 호주의 골든 크로스, 심지어 남미 볼리비아 소금사막에서의 아침을 꿈꾼다. 아예 유명 여행가를 모방해 극단적인 세계 오지 여행만을 꿈꾸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여행의 기본속성이 '먼 곳에의 동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만나는 아시아'의 저자 안진헌(39)은 이러한 편견에 강하게 반박한다.

그는 "당신이 아시아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편견들은 오해이며 우리는 아시아를 지나치게 저평가해 왔다"며 "내가 만난 아시아는 지구의 어떤 곳도 따라올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와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미 수많은 전문여행가들이 아시아를 매번 다르게 여행하고 있다고 안내한다. 이미 10여권의 아시아 여행서를 출간하며 아시아 전문가로 활약해 온 저자는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아시아를 여행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절반만 여행한 것이다"고 예비 여행객들의 편견에 도전한다.

■ 진정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이 책은 방콕을 거점으로 삼아 10년 동안 아시아에서 생활하는 동안 저자 스스로가 아시아를 좋아하게 된 과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수차례나 반복해서 들렀던 네팔 다르질링, 라오스 루앙프라방, 인도의 타지마할 등 경험과 기록이 차곡차곡 싸여있는 곳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서 권하는 여행지들은 이제까지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장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른바 유네스코가 선정한 아시아의 대표적인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미 당신도 수차례 방문했던 진부한 여행지 일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십 수년에 걸친 반복여행을 통해 체득한 깊은 눈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자신의 문법으로 소개한다. 보다 느리게 보다 찬찬히 도시와 역사를 음미하고 감상하자는 취지에서다.

때문에 이 여행서의 문법은 초보 여행가가 양껏 정보를 수집해 편찬했던 기존의 백과사전식 정보서가 아니다. 현장에서 십수 년을 오가며 느꼈던 선배 여행가의 친근한 안내서이자 '슬로우 트래블'을 위한 체계적인 해설서에 가깝다.

인도 다르질링의 은은한 차 향기, 세상의 지혜를 간직한 중국 태산, 황제와 왕비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간직한 인도 타지마할, 크메르 제국의 위용을 간직한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등 고대의 유적에서 홍등의 불빛, 사람들의 소소한 생활까지 다양한 아시아의 모습을 선보인다.

저렴한 해외여행이나 화려한 리조트 등 기존의 오해와 저평가로 얼룩진 아시아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숨쉬는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독자들은 저자의 목소리에 깊은 울림을 얻을지 모른다. 같은 공간을 여러 번 들락거리며 느꼈던 감정의 변화들, 간절히 보고자 했던 공간에서 느꼈던 감동, 무언가를 알아가는 기쁨, 여행 중에 만났던 소박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은 아시아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서이자 아시아 여행에 집중했던 한 젊은 도전자의 자기 고백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안진헌 인터뷰] "보다 느리게 여행할수록 진정한 여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1996년 처음 한국을 떠나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지금은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 머물며 전업 여행자로 생활하고 있다. 또한 실험적인 여행 작가 모임인 '트래블 게릴라'를 통해 아시아 여행의 트렌드를 이끌어 온 아시아 전문가다. 특히 태국에 관해서는 국내에서 빠질 수 없는 전문가로 그의 태국여행서는 10년째 재판을 갱신하는 스테디셀러로 유명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여행에 필요한 것은 체력이나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고 강조해온 '슬로우 트래블' 전도사다.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감탄사만 연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느리게 현지 문화의 시작과 끝을 만나야만이 여행으로서의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는 주장이다.

-제목이 '처음 만나는 아시아'이다. 이미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매년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다. 책에 언급된 지역도 이미 국내에는 잘 알려진 곳이 다수인데….

"10번을 가도 갈 때마다 새로운 곳이 많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시아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그냥 관광을 해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행의 목적이 관광이 아니라 휴양과 사색, 배움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행지를 고려할 때 아시아 지역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 책은 보다 새로운 아시아 여행을 제안하고 문화와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먼저 보길 권하는 시도에서 썼다. 지나치게 익숙해서 지나치고 있었던, 혹은 잘 모르던 처음 만나는 새로운 아시아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에 언급된 '유네스코 선정 24개 도시'의 특징이라면 무엇일까?

"유적지이면서도 지금 현재도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 중심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낸 유적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답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을 선정했다. 설령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본다 해도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페트라, 타지마할, 앙코르와트 이런 유적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리쟝, 호이안, 박크타푸르, 다르질링 같은 곳을 거닐며 흥겹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에서 인도, 심지어 요르단까지…아시아란 범주가 대단히 넓다는 생각을 했다. 아시아의 특징이라면?

"아시아의 가장 큰 특징. (중동은 약간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검은 머리를 하고 있다. 나도 여행가로 살았지만 검은 머리가 주는 편안함이 이유 없이 좋았다. 그리고 도시보다는 시골에서는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서, 여행객들을 친절하게 맞이해줬다. 같은 동양인에게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유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TV다큐멘터리인 '차마고도'나 '누들로드' 등으로 인해 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셈이다. 실제 현장에서 느낀 바는 어떠한가?

"'차마고도'나 '누들로드'를 보고 보통의 한국인들은 저런 곳들이 있구나하는 생각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실제로 답사하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반면에 서구 여행자들은 훨씬 다양한 시도를 한다. 2주간의 휴가기간에 티베트에서 네팔까지 자전거를 타고 히말라야를 넘는 유럽인도 봤다. 체력이나 언어의 문제라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게 하려는 교육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너무 유명한 곳들에 집중해서 몰려다니는 경향이 크다."

-어떤 여행방식을 추천하는가?

"여행방식에 옳고 그름은 없다. 단 시작은 넓게 해도 결국 특정 부분에 흥미가 생기면 깊게 보고 싶은 호기심을 놓치지 않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쌓여서 깊이를 더 해 간다고 생각한다. 다만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어울리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치듯 지나가기 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권한다."

-'상근' 여행자의 삶이 힘들진 않나? 1996년부터라면 어느새 15년째인데….

"1년에 많게는 60번 침대를 바꾸어 생활한다. 하지만 15년 내내 여행만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언제나 여행을 마치곤 돌아가는 곳이 있었지만 단지 한국이 아니었을 뿐이다. 더불어 심신이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면 그 긴 시간을 이렇게 살았을 리 없다. 여행이 생활인 사람에게 길 위에서의 시간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다만 '길 위의 삶'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돈벌이가 병행되어야 했고, 아직까진 운이 좋았을 뿐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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