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또 김연아 죽이기…누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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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6일 15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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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김연아 죽이기'가 시작됐다. 석연치 않은 편파 판정, 특정 선수에게 유리한 룰 개정, 이전 소속사의 활동 방해 공작과 언론 플레이….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다.

'여왕'이라는 자리가 그래서 늘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녀를 정상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뒷전에서 온갖 지저분한 술수가 동원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연아 죽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력 하나만으로 '여왕'이 된 그녀가 대단할 따름이다.

이번엔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김연아 죽이기'의 저격수로 나섰다. '피겨퀸' 김연아와 오서의 결별을 두고 진흙탕 싸움이 진행된 것이다. 스승과 제자로서 찰떡궁합을 전 세계에 과시했던 두 사람인지라 충격의 여파가 더 크다.

오서가 주장한 '김연아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는 결별 사유는 국내 언론을 통해 '빅뉴스'로 보도됐다. 김연아의 이미지는 고마운 스승을 이용하고 냉정하게 버린 파렴치한 선수로 순식간에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후 김연아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가 이를 반박했다. 하지만 오서의 국내 언론 인터뷰, 김연아 트위터 글, 오서의 해외 언론 인터뷰, 김연아 미니홈피 글 등이 이어지며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공방전을 보면서 국내 여론도 양분됐다. "오서가 불쌍하다"며 김연아를 탓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가 하면, "오서가 지나치다"고 김연아를 옹호하는 팬들의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래 시작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진흙탕 싸움을 먼저 건 당사자는 오서와 그의 소속사인 IMG라는 사실이다.

IMG뉴욕은 8월23일 갑작스럽게 국내외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면서 "김연아 측에서 오서에게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작정하고 그녀를 싸가지 없는 이미지로 만들면서 '김연아 죽이기'에 불을 붙인 것이다.

급기야 오서는 26일 새 시즌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김연아의 새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이 '아리랑'이라는 사실까지 폭로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피겨 선수로선 극비로 감춰야할 사항을 본인 스스로 '나는 이제 더 이상 김연아의 코치가 아니다'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선수들에게 대놓고 알려준 것이다.

오서는 국내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연아를 더 이상 가르치지 않게 됐지만 그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는 식으로 말하며 온갖 '쿨한' 척은 다 했다. 그의 말이 진심이었다면 애당초 논란이 될만한 "모욕당했다"는 극단적 표현이나 김연아 어머니 박미희 씨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식의 발언은 자제했어야 했다.

특히 오서는 캐나다 언론 등 외신에는 국내 언론보다 더 강한 톤으로 김연아 측이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토사구팽'한 것으로 말하며 동정 여론을 유도했다. 이 전략은 성공했다. 해외 언론은 김연아를 '은혜도 모르는 동양 선수'로 규정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단순한 사실이 계속 간과되고 있다. 김연아와 오서는 스승과 제자이기 이전에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점이다.

김연아 측은 잘 가르쳐줄 코치를 찾아서 강습비를 지불하며 교육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 코치 입장에선 잠재력 있는 선수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잘 가르쳐 좋은 성적을 내도록 만들면서 강습비를 벌고 자신의 경력도 높이는 것이 업무다.

오 서는 그동안 김연아의 강습료로 시간당 110달러를 받았다며 액수가 적다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일단 강습료가 얼마인지 계약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도 없다. 마치 자신이 돈 없는 선수에게 자선이라도 베푼 것처럼 몰아가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오서는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재능 있는 피겨 선수였지만 김연아를 맡기 이전에 코치 경력은 없었다. 신예 코치로서 김연아의 가능성을 평가해 그녀를 맡았고 양측이 계약을 하면서 합의하에 적절한 강습료를 정한 것이다.

강습료 액수를 놓고 이제 와서 적다, 많다를 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김연아를 세계 정상으로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그녀의 가족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무료로 강습을 한 스승은 아니다.

오서는 꼬박꼬박 시간당 강습료를 챙겨 받았다. 김연아가 세계무대에서 정상에 서고 '국민스타'로 부상하자 광고에 함께 출연해 모델료를 받는 등 부가적인 혜택도 나눠 가졌다. 피겨 코치로서 오서의 명성도 김연아와 함께 이뤄낸 성과를 통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도록 높아졌다.

두 사람의 계약 기간은 애당초 밴쿠버 겨울올림픽까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 김연아가 프로로 전향하지 않고 대회에 참가하며 활동을 지속한다고 해도 오서와는 재계약을 하거나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예정된 수순이었다.

설령 김연아 측에서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하더라도 계약에 위반되는 사안이 전혀 아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가만히 주시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오서와 IMG가 김연아를 상대로 소송도 불사했을 것이다.

이처럼 결별 자체는 문제될 것도 없으며 IMG가 강조한 '해고'가 아닌 '해지'에 불과하다. 어떤 선수라도 계약 기간이 끝나면 코치를 교체할 수 있다. 코치 역시 자신의 사정에 따라서 그 선수를 다시 맡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아사다 마오도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끝난 뒤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도록 가르쳐준 스승 타티아나 타라소바와 전담 코치 재계약을 맺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아사다 마오가 타라소바에게 먼저 해고 통보를 했는가' 같은 것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당사자들 간의 계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방적 해고 통보'를 들먹인 오서의 인터뷰와 IMG 측의 보도자료엔 다분히 악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김연아와 오서를 볼 때 '스승과 제자'라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도의적인 책임을 따지고 두 사람이 강습비를 주고받는 계약상의 코치와 선수라는 점을 망각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오서의 말 바꾸기 역시 지금 그의 행보가 '김연아 죽이기'의 일부라는 의심을 강하게 들게 만든다. 그는 토리노 세계선수권 대회가 끝난 뒤 4월 아사다 마오 측에서 자신에게 코치 영입을 제의한 적이 있다고 언론에 스스로 흘렸다. 아사다 마오의 코치 제의 문제는 김연아와 오서가 갈등을 빚게된 이번 진흙탕 싸움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는 23일 IMG의 보도자료가 나온 뒤 결별 이유를 취재하는 국내 언론에도 "아사다 마오 측이 코치를 제의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사다 마오 측은 4월 이 내용이 처음 불거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일본 언론을 통해 "오서에게 코치 제의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오서는 25일 캐나다 TV에 출연해 김연아와 사이가 벌어진 배경을 설명하면서 "4월 아사다 마오가 내게 코치를 제의했다는 루머가 돈 적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한술 더 떠서 "그런 제안을 절대로 받은 적이 없다"고 180도 말을 바꿨다. 오서는 아마도 이 문제가 불거지면 한국 언론이 자신의 말을 왜곡한 것이라고 발뺌할 것이다.

오서가 아사다 마오에게 코치를 제의받은 것이 사실이더라도 혼자서만 알고 굳이 언론을 통해 외부에 이를 알릴 필요는 없었다. 김연아에게 "내겐 네가 우선"이라며 안심시켰다는 얘기도 자칫 자신의 몸값을 올려달라는 오해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왜 지금 오서를 저격수로 내세운 '김연아 죽이기'가 다시 시작됐을까. 김연아 팬들은 IMG가 '일방적 해고 통보'의 보도자료를 뿌린 시점이 김연아의 첫 해외 아이스쇼 '2010 올댓스케이트 LA'의 티켓 판매가 시작된 날이라는 점을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 팬이 아니더라도 의심이 갈만한 대목이다.

IMG 는 한 때 김연아가 소속됐던 세계적으로 규모가 큰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다. 한국에도 이 회사의 지점 격인 IMG코리아가 있다. IMG는 2007년 'IMG가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김연아가 계약을 해지하고 IB스포츠로 소속사를 옮기자 20억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법원에선 김연아 측이 주장한 '관리 소홀'이 인정돼 IMG가 패소했다. 팬들은 부실한 매니지먼트도 모자라서 김연아의 발목을 잡으려 했던 시도가 무산됐다며 고소해했다. IMG로선 김연아에게 두고두고 앙심을 품을만한 일이었다.

아,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IMG의 홈페이지에서 현재 이 회사에 소속된 겨울 스포츠 선수 리스트를 보면 피겨 팬들에게 브라이언 오서 말고도 무척이나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띈다. 바로 Mao Asada, 아사다 마오다. 그녀는 IMG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이 회사의 대표적인 선수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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