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제재 딜레마]국내기업 ‘이란發먹구름’ 2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7일 03시 00분


대우일렉 매각 ‘노심초사’

우선협상권 가진 이란계社
멜라트 연계땐 성사 어려워
채권단, 거래은행 정보 요청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작업이 난기류에 빠졌다. 이란계 다국적 가전유통회사인 엔텍합 인더스트리얼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여서 이란 제재의 추이에 따라 거래 자체가 무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일렉 채권단은 최근 엔텍합의 인수자문사에 대우일렉 인수자금조달 계획 및 거래은행 가운데 미국의 제재 대상이 포함됐는지 등을 자세히 밝혀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엔텍합이 자금 조달을 못하면 계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전 질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채권단의 요청은 통상적인 절차를 넘는 것으로 미국의 이란 제재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엔텍합이 인수자금을 모두 마련하더라도 미국이 지난달 제재대상으로 지정한 멜라트은행 등 이란의 13개 금융기관이 개입하면 채권단으로서는 협상을 되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재대상 금융기관이 인수자금에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매각을 강행할 경우 채권단 소속 국내 금융회사들은 미국의 이란 제재법안에 따라 미국의 금융회사들과 자금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

엔텍합 측이 이란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한국에서 인수자금을 모두 조달할 경우에는 이란제재법에 저촉되지 않고 매각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에 대한 독자제재를 검토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한국에서의 자금 조달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채권단 내부에서는 가격 조정이 이뤄지더라도 현 상황에서 이란 업체에 국내 기업을 넘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채권단은 4월 중순 엔텍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7월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엔텍합이 처음 제시한 인수희망가격 6050억 원에서 15%를 깎아 달라고 요구하면서 협상이 지연됐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플랜트 수주 중국에 뺏기나 ▼
중동의 43% 거대시장 이란
中업체, 정부지원 업고 공세


미국이 한국에 대(對)이란 경제 제재 동참을 요구하면서 건설업계에 중국발 먹구름이 끼고 있다. 한국 기업이 주춤하는 사이 이란 제재에 미온적인 중국이 ‘중동공정’을 통해 플랜트시장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동지역의 건설경제 관련 조사기관인 MEED 프로젝트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이란은 중동의 화공플랜트시장(2039억 달러 규모)의 43.2%인 882억 달러를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최근 중국 건설업체들은 정부의 대규모 금융지원을 앞세워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진출에 총력을 쏟고 있다. 중국석화(SINOPEC)만 해도 최근 몇 년간 중동 프로젝트 규모가 30억∼40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벌써 108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 제재로 한국과 서방 기업이 이란과의 거래를 줄이거나 중단할 경우 중국이 그 빈자리를 손쉽게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윤서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은 “건설 플랜트 부문에서 중국의 영향력 강화와 경험 축적의 기회로 이어져 중동 플랜트시장에서 우리 업체에 대한 중국의 경쟁력 강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이란 제재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이란 제재에 반대하는 중국은 최대한 결정을 미룰 것으로 보이지만 계속 반대할 경우 미국과의 교역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는 처지가 다르다. 박철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이 실제 제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규정대로 적용할지 불확실하고 그 경우 중국은 한국보다 운신의 폭이 넓다”고 말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관측도 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리비아와의 외교 마찰에도 불구하고 대우건설이 공사를 따냈다”며 “사태가 장기화되면 한국 업체에 영향이 크겠지만 제재가 오래가지 않는다면 한국 업체가 그동안 이란에서 이뤄낸 실적이 탄탄하기 때문에 중국 업체에 단기간에 추월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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