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6일 정부의 대(對)이란 제재 문제가 가져올 경제적 파장을 걱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되 그에 따른 이란의 ‘경제적 보복’을 최소화할 묘안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부처에서는 “이란에서 들여오는 원유는 전체 수입 원유의 9.5%에 달한다. 이란이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원유 공급 중단을 선언할 경우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5일(현지 시간) “이란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국가의 기업은 미국과의 경제 관계에서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란 제재 이행을 준수하는 국가의 기업에는 이란과의 거래에 예외를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미 의회를 통과해 대통령 서명을 마친 이란 제재 법안은 이란 제재에 협조적인 국가들에는 중요한 예외를 인정하는 신축성을 담고 있다”며 “우리가 이란과 상업적 거래를 하는 특정 기업의 예외를 인정해주려면 그 기업이 속해 있는 국가가 대이란 제재 이행에 전면 협조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 노력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국익’이라는 외교통상부와 ‘원유 수급 문제가 가져올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한 국익’이라는 기획재정부 간의 미묘한 갈등 양상도 감지된다.
○ 최악 시나리오는 ‘원유 공급 중단’
원유를 사실상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 경제는 원유 수급 상황에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란이 한국의 대이란 제재 조치에 반발해 원유 공급을 중단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정부로서는 ‘끔찍한 악몽’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일본 정부가 독자적 제재도 아닌, 유엔의 (대이란) 결의안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이란 기업 40곳을 추가 제재 대상으로 발표하자 이란이 곧바로 ‘원유 수입에 중대한 결과가 생길 수 있다’며 경고하고 나섰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처럼 원유 수급과 관련된 이란의 태도를 세밀하게 파악하며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있지만 전례를 찾기 어려운 ‘초유의 사태’를 맞아 해법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란산 원유의 수입이 막힐 경우 한국이나 일본 등은 현물시장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현물시장 가격에 연동돼 계약 가격을 정하는 계약거래 시장까지 자극해 원유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원유 가격이 10% 상승하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0.25%포인트 감소하고 소비자물가는 0.03%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미국-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2003년만 봐도 연초 6%대로 예상됐던 경제성장률이 유가 급등의 영향 등으로 결국 2.8%에 그치고 말았다.
○ 경제 부처와 외교안보 부처의 차이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북한·이란 제재 조정관이 이달 초 방한해 한국 정부에 이란 제재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 뒤 재정부와 외교부 간의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원유 수급 걱정’과 무관치 않다. 아인혼 조정관의 방한 이후 외교부 주변에서는 ‘한국도 대이란 제재에 적극 나서줘야 한다’는 기류가 더욱 강해진 반면 재정부로서는 그에 따른 경제적 파장, 특히 원유 수급에 대한 우려가 ‘발등의 불’이 됐기 때문이다.
6일 오후 외교부 쪽에서 “이란에 대한 한국의 ‘독자적 제재’를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재정부 내부에서는 “외교부가 성급한 정보를 흘려 상황을 꼬이게 하고 있다”는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나왔다. 재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나서 외교부 측에 ‘독자적 제재’ 발언에 대한 해명을 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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