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끊이지 않는 드레스 선물…패션계가 펠트로를 짝사랑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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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9일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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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명품 브랜드 구찌와 마돈나가 주관한 뉴욕의 한 자선행사에 참여한 귀네스 펠트로. 그는 스타일리스트의 도움 없이 완벽한 룩을 연출하는 몇 안되는 스타로 꼽힌다. 사진제공 조벡.
2007년 명품 브랜드 구찌와 마돈나가 주관한 뉴욕의 한 자선행사에 참여한 귀네스 펠트로. 그는 스타일리스트의 도움 없이 완벽한 룩을 연출하는 몇 안되는 스타로 꼽힌다. 사진제공 조벡.

귀네스 펠트로(38). 이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최근 속편이 나온 블록버스터 영화 '아이언맨'의 여주인공?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 아니면 영국 출신 인기 록그룹 '콜드 플레이(Cold Play)'의 리더 크리스 마틴의 부인? 그도 저도 아니라면 국내 패션 브랜드 '빈폴' TV광고에서 다니엘 헤니와 함께 런던 거리를 거닐던 미모의 여배우?

이 모든 것이 배우 귀네스 펠트로의 실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결혼과 출산으로 화제의 중심에서 살짝 비껴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할리우드에서 몇 안 되는, 흥행성과 작품성을 겸비한데다 국제적 인지도도 높은 톱 배우 중 하나다. 이런 배우를 광고계에선 '한 방'이 있는 모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한 방'이 있는 여배우, 패션 센스마저 빛나

영화감독인 아버지와 에미상 수상에 빛나는 배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배우가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뉴욕 맨해튼의 고급 주택가,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뒤 그 곳의 명문 사립 여학교 스펜스 스쿨을 졸업한, 그야 말로 미드 '가십걸'의 여주인공처럼 럭셔리한 어린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펠트로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첫 번째 작품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화제작 '세븐'이었다. 영화 속 캐릭터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남자 주인공 브래드 피트와의 염문으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펠트로가 직접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웹사이트 'GOOP'. 그가 이 사이트를 통해 소개한 비빔밥 요리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펠트로가 직접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웹사이트 'GOOP'. 그가 이 사이트를 통해 소개한 비빔밥 요리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당시 펠트로의 별명은 '트라이베카의 퍼스트 레이디'. 뉴욕 맨해튼 남단, 트라이베카 지역에 근거를 두고 창립한 독립영화 제작 전문 영화사(현재는 월트디즈니에 매입됐다), 미라막스가 밀어주는 전도유망한 여배우였기 때문이다.

그 즈음 그가 촬영한 5편의 영화 중 하나가 '셰익스피어 인 러브'다. 펠트로에게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이 영화를 통해 그 전까지는 '집안 배경과 외모가 모두 빼어난, 혹은 브래드 피트나 벤 애플랙 등 당대 최고 남자 배우들과의 스캔들에 빛나는 금발머리 여배우'정도였던 이미지가 급전환될 수 있었다. 스캔들 상대 배우들도 거머쥐지 못한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하게 됐으니 이들 없이도 이름값을 할 수 있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가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상대우위에 있는 분야는 패션이다. 그는 보그를 비롯한 유명 패션지들의 단골 커버걸이자 각종 시상식의 베스트 드레스로 꼽혀왔다.

펠트로가 잠시 연예계 활동에 소홀했던 때도 레드카펫에 설 일이 있을 때면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의 구애가 이어졌다. 펠트로를 위해 제작한 드레스들로 가득 찬 가방이 그의 홍보회사 사무실 앞으로 줄줄이 도착했다. 원래부터 스타일리스트에게 자신의 스타일링을 잘 맡기지 않는 펠트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시상식에서조차 자신이 직접 고른 드레스를 입었다. 그 만큼 자신의 스타일을 정확히 알고 있고, 또 센스가 있다는 뜻. 이 정도로 감각적인 여배우는 할리우드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귀하다.

펠트로는 이후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드레스 스케치들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 많은 스케치 중에서 맘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스케치 정도가 아니라, 아예 드레스를 직접 제작해 말도 없이 미리 보내 놓고는 '어떤 옷으로 하겠냐'며 선택을 종용했지만 결국 내가 직접 골랐다."

펠트로가 여유롭고 우아한 '젯 셋'족을 연기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토즈'의 지면 광고. 사진제공 조벡.
펠트로가 여유롭고 우아한 '젯 셋'족을 연기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토즈'의 지면 광고. 사진제공 조벡.

▶ 광고 촬영 때도 연기하는 마음으로

그만큼 패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그를 필자가 만난 것도 역시 패션 브랜드의 광고 촬영장에서였다.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토즈'의 2008년 추동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원래 구두로 유명한 '토즈'는 당시 미국 출신의 신예 디자이너 데렉 램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용하면서 가방과 잡화, 의상 분야로 브랜드 이미지를 확장하는데 힘을 쏟고 있었다. 이런 시기 펠트로가 모델로 선발된 것은 토즈의 야심찬 계획에 딱 맞는 전략이었다.

데렉 램은 새로운 광고 캠페인을 위해 모델과 스태프들을 이탈리아 남부의 아름다운 섬 카프리로 불러들였다. 이 광고의 촬영은 펠트로와 막역한 사이인, 세계적인 포토그래퍼 마리오 테스티노가 맡았다.

카프리섬 인근에 띄워진 초호화 크루저. 이 곳에 마련된 촬영세트는 광고 촬영을 앞두고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패션 광고 촬영에 전문 모델 대신 할리우드 스타가 등장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드문 일이기에 촬영 스태프 뿐 아니라 펠트로를 위한 보디가드까지 함께 승선했다. 또 파파라치들이 등장해 광고 컨셉트가 미리 노출될 일을 막기 위해 크루저 인근에 여러 척의 선박을 따로 띄우기도 했다.

이처럼 긴장감이 흐르는 현장. 그러나 정작 모델인 펠트로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했다. 필자는 펠트로에게 여유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할리우드 여배우 특유의 포스(force) 때문이냐구요? 절대 아니예요. 사실 광고 촬영은 영화 촬영과 많이 달라 제게도 무척 긴장되는 작업인 걸요. 광고주와 포토그래퍼가 요구하는 컨셉트에 맞추기 위해 연기를 한 거죠."

당시 '토즈'측이 그에게 요구한 캐릭터는 그레이스 켈리나 오드리 햅번처럼 우아하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여성으로, 럭셔리한 크루징을 만끽하는 젯 셋(jet-set)족이었다. 긴장된 상황에서도 컨셉트에 맞는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표정과 마음가짐까지 금세 가다듬는 프로정신이 놀라웠다.

'토즈'는 당시 단편 다큐멘터리 영상도 함께 제작했다. 이 영상을 만든 감독은 지난 5월29일 생을 마감한 할리우드 명배우 데니스 호퍼. 배우로서 더 유명한 그는 명작 '이지 라이더'를 비롯, 다수의 장편과 단편영화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감독이기도 했다. 그가 감독을 맡고 펠트로가 연기한 '토즈'의 8분짜리 다큐멘터리 영상은 그해 5월 칸 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됐다.

이 영화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는 당시 만난 펠트로를 이렇게 기억했다. "할리우드 스타 중 스타일리스트의 도움 없이 패셔너블한 경우는 드물지 않은가. 하지만 펠트로는 도시적인 감성,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가진 이 시대의 보배다."

펠트로가 엘리자베스 헐리, 캐롤린 머피, 힐러리 로다와 동반 출연한 에스티로더 ‘센슈어스’ 광고. 당대 최고 모델들 간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촬영된 이 광고에서 펠트로는 섹시함과 함께 청순미, 지성미를 함께 발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사진제공 조벡.
펠트로가 엘리자베스 헐리, 캐롤린 머피, 힐러리 로다와 동반 출연한 에스티로더 ‘센슈어스’ 광고. 당대 최고 모델들 간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촬영된 이 광고에서 펠트로는 섹시함과 함께 청순미, 지성미를 함께 발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사진제공 조벡.


필자가 다시 그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 뉴욕의 한 스튜디오에서였다. 이 때 그는 미국의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의 새 향수, '센슈어스' 광고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를 찾았다. 2005년부터 이 브랜드의 또 다른 향수 '플레저' 광고 모델로 활동하던 그가 새 향수의 광고에 참여하게 된 것이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센슈어스' 광고는 에스티 로더의 여러 라인 모델로 각기 활동하던 엘리자베스 헐리, 캐롤린 머피, 힐러리 로다와 함께 동반 출연하는 컨셉트여서 촬영 당시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광고의 컨셉트는 남자 친구의 집에서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몸 위에 커다란 남성용 셔츠 한 장만 걸친 심플하지만 섹시한 이미지. 진한 화장도, 손이 많이 간 헤어스타일도 필요 없는 '수수한' 광고 컨셉트지만 그래서 더욱 모델의 '실제적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예민한 광고였다.

당대 최고 광고 모델들 간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경계심, 그 와중에서도 펠트로는 하얀 티셔츠 한 장 만으로도 빛나는, 돋보이는 미모를 자랑했다. 그처럼 청순-세련-섹시미를 동시에 발산할 수 있는 스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2005년 펠트로가 다니엘 헤니와 함께 찍은 제일모직 '빈폴'  캠페인은 그가 패션 광고 모델로 출연한 최초의 작품이다. 사진제공 조벡.
2005년 펠트로가 다니엘 헤니와 함께 찍은 제일모직 '빈폴' 캠페인은 그가 패션 광고 모델로 출연한 최초의 작품이다. 사진제공 조벡.


▶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

사실 그가 처음으로 패션 광고 캠페인 모델을 맡게 된 브랜드는 제일모직의 '빈폴'이었다. '빈폴' 마케팅담당 임명선 차장은 2005년, 그가 다니엘 헤니와 함께 찍은 당시 광고 촬영 현장을 이렇게 기억했다.

"첫째를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특히 스타일에 대해 분명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하면 세련되게 스타일링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줬어요."

펠트로는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개인 웹사이트 'GOOP(www.goop.com)'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쇼핑 이력, 다녀온 여행지, 감동 받았던 전시와 공연 등을 낱낱이 업데이트한다. 특히 그가 이 사이트를 통해 재미를 붙인 분야는 요리. 그가 GOOP에서 소개한 한국 음식, 비빔밥의 소개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됐다. 그 이후 펠트로의 연관 검색어 중 하나가 비빔밥(Bibimbob)'이 됐을 정도. 그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 주저 없이 김치를 꼽을 정도로 김치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두 아이(딸 애플과 아들 모제스)의 엄마 역할에 푹 빠져 있었던 그는 올해 들어 배우로서의 활동에도 슬슬 시동을 걸고 있다. 둘째 출산 이후 첫 작품인 '아이언맨2' 출연을 위해 오로지 케일만 섭취하는 다이어트로 이전 몸매를 되찾기도 했다.

올 겨울 미국에서 선보이게 될 영화 '러브 돈 렛 미 다운(Love don't let me down)'에 이어 주드 로, 케이트 윈슬렛 등과 함께 내년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인 스릴러 영화 '컨테이전(Contagion)'에 참여하는 등 다시 한 번 작품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활동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세간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스타일리시한 그야말로 패션계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세기의 아이콘이다. 앞으로 또 어떤 패션 또는 뷰티 광고를 통해 그를 만나볼 수 있게 될까. 이런 기대감으로 설레는 것은 비단 필자 뿐 만이 아닐 것이다.

조벡 /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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