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남편 흉기에 ‘코리안드림’ 무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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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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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 지 8일된 스무살의 베트남 새댁

27세 연상 남편 돌변… 끝내 숨져
마구잡이 국제결혼 상혼 도마에
베트남 영사관 “매우 심각한 문제”

베트남 호찌민 빈민가에 살고 있던 T 씨(20·여). 그에게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할 유일한 비상구였다. 한국 TV 드라마를 통해 ‘오빠’ ‘사랑해요’ 등 간단한 한국말을 익히면서 ‘그날’을 기다려왔다. T 씨가 남편 장모 씨(47)를 처음 만난 건 올 2월 7일. 호찌민에서 국제결혼회사 주선으로 장 씨와 선을 본 것.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에서 실패한 이야기도 들었지만, 남편의 첫인상은 괜찮아 보였다. 직업이 없고 나이가 많아 걱정됐지만 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걱정을 눌렀다. 다음 날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결혼식은 열흘 뒤 호찌민에서 치렀다.

입국 수속 절차 때문에 T 씨는 베트남에 남고 남편이 먼저 부산 사하구 신평동 신혼집으로 돌아갔다. 4월 24일 여권과 비자 문제로 다시 베트남에 온 남편을 친정 식구들에게 인사시켰다. 마침내 T 씨는 이달 1일 한국 땅을 밟았다. 33m²(약 10평)짜리 단칸 전세방을 보고도 실망하지 않았다. 언어 때문에 집에서만 보내야 했지만 T 씨에게 남편은 한국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8일 오후 7시 반 장 씨가 돌변했다. 저녁식사를 하다가 장 씨가 무턱대고 주먹과 발로 아내의 얼굴과 온몸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 와 아내의 배 부위를 찔렀다. 얼마 뒤 정신을 차리고 아내를 흔들었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인 T 씨가 너무나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장 씨는 인근 치안센터에 전화를 걸어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자수했다. 장 씨는 경찰 조사에서 “귀신이 아내를 죽이라고 말하는 환청을 듣고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장 씨는 베트남에 선을 보러 가기 직전에도 정신질환 증세로 5일간 병원에 입원했다. 2002년부터 부산 모 병원 2곳에서 57차례에 걸쳐 입원 및 통원 치료를 받았다. 2005년엔 ‘환청이 들린다’며 부모를 폭행하기도 했다. 아들을 걱정하던 어머니는 장 씨에게 결혼 전 여러 차례 의약품 복용을 권유했다. 장 씨는 “약을 먹으면 아내가 이상하게 여길 것 같다”며 약을 끊었다. 장 씨 어머니는 “8년 전 아들이 장가를 못 가 우울증을 앓더니 정신질환 증세까지 보였다”며 “며느리를 딱 한 번 봤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고 울먹였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9일 장 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들 부부를 중개한 결혼업체에 대해서도 인가 여부, 소개과정에서의 불법 여부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결혼 상대자에 대한 사전 검증 없이 돈만 내면 무조건 연결시켜 주는 국제결혼업체의 그릇된 상혼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주한 베트남영사관과 경찰은 T 씨의 여권번호 등을 토대로 베트남 현지 가족 연락처를 파악하고 있다. 베트남영사관 관계자는 “이 사건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베트남 정부에 사건 경위 등을 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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