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61>

  • 입력 2009년 8월 18일 14시 34분


때론 호기심이 행운을 낳고 때론 호기심이 죽음을 이끈다.

2층 전시장 문이 열렸다. 세렝게티와 보르헤스가 떠밀리다시피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밀지 마. 누구야?"

찰스가 세 번째 다리를 퉁투웅 두드리며 고함을 질렀다.

"아악!"

돌림노래처럼 서령의 비명이 이어졌다. 왼 무릎을 꿇었던 글라슈트가 일어나서 석범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든 것이다. 석범이 강철구두로 앞차기를 시도했지만, 글라슈트는 가슴을 맞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튕겨 나간 석범의 몸이 천장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정신을 잃은 듯 엎드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빨리 나가, 어서!"

볼테르가 구경꾼들을 향해 외쳤다. 세렝게티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울상으로 물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당신 눈엔 이게 괜찮아 보여?"

되물은 이는 볼테르가 아니라 찰스였다. 서령이 두 눈을 반짝이며 찰스를 거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판 제대로 싸워보는 건 어때요?"

투웅!

찰스가 세 번 째 다리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그리고 속마음을 들킨 듯 웃었다. 축하연에 참석한 민병구, 히로 하사시, 다니엘 라츄만 팀장을 눈으로 찾았다.

"보안청 은석범 검사와 SAIST 최볼테르 교수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팀장들이 저마다의 격투 로봇을 작동시켰다. 4강에 오른 슈타이거, 졸리 더 퀸, 무사시가 거의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후의 일격을 위해 석범에게 다가가던 글라슈트가 로봇들의 기지개에 돌아섰다.

"이게 뭣하는 짓이오? 찰스 사장! 당장 중단시키시오."

볼테르의 절규에 찰스가 비웃음으로 답했다.

"혼자 2층에서 뭘 하나 궁금했는데 글라슈트랑 놀고 있었군 그래. 최 교수! 여긴 경기장도 아니고, 두 분을 구하는 일이니 무슨 짓을 해도 특별시연합법원은 용인해 줄 게요."

보르헤스가 개구리처럼 엎드린 채 소리쳤다.

"교수님!"

석범은 글라슈트와 로봇들에게 가려 탈출이 어려웠지만, 볼테르와 출입구 사이에는 아무런 방해물도 없었다.

"그래요. 여기에요. 소장님. 서둘러요."

볼테르는 출입문 대신 글라슈트 쪽을 택했다. 로봇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서 쓰러진 석범에게 걸어갔다.

로봇 석 대가 글라슈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졸리 더 퀸이 옆차기로 글라슈트의 가슴을 가격하자, 슈타이거와 무사시가 니킥을 보탰다. 배틀원에서 진 것에 분풀이라도 하듯, 졸리 더 퀸이 긴 다리로 글라슈트를 저항할 수 없게 붙잡자, 슈타이거가 돌려차기로 허리를 찍었다. 연습용 하체를 부착한 글라슈트에겐 충격이 컸다. 무사시가 박치기로 글라슈트의 머리를 때렸다. 그 순간 다시 글라슈트가 고개를 꺾기 시작했다, 배틀원의 결승전처럼.

졸리 더 퀸의 다리를 부러뜨린 글라슈트, 곧바로 무사시에게 덤벼들어 머리를 뜯어냈다. 배틀원 정식 경기였다면 반칙이었겠지만, 지금 이 순간 규칙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슈타이거가 잠시 뒤로 발걸음을 옮기자, 다시 달려들어 가슴을 박살내버린 글라슈트. 로봇 석 대가 차례차례 나가떨어졌지만, 글라슈트는 아직 광기가 식지 않은 듯 계속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어댔다.

글라슈트가 최종 승자로 결정된 후 찰스가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가질 거야. 억만금이 들어도, 저 로봇을 가지겠어."

글라슈트의 시선이 볼테르와 석범에게 향했다. 석범은 그때까지도 깨어나지 못했다. 글라슈트가 오른손으로 석범을, 왼손으론 볼테르의 허리를 감아 들었다.

"글라슈트. 나다. 네 주인 최 볼테르! 최 볼테르가 명령한다. 멈춰. 당장 우릴 내려놔."

글라슈트가 고개를 반만 돌려 볼테르와 눈을 맞췄다.

"그래, 글라슈트. 나야. 나 알아보겠지? 네 생명의 근원, 숨결의 주인 볼테르라고."

글라슈트의 고개가 다시 정면을 향했다. 출입문으로 바짝 물러선 구경꾼들을 훑어보다가, 사장 찰스에게서 시선이 멈췄다. 찰스도 자신에게 머문 글라슈트의 눈길을 느끼며, 팔을 잡아끄는 서령을 떼어놓은 채 한 걸음 나섰다.

"멋지구나. 글라슈트! 걱정 마라. 오늘 일은 내가 다 덮어주마. 네가 얼마나 멋진 로봇인가를 충분히 증명하였으니, 보상을 해줘야겠지? 자, 그 멍청이들은 내려놓아라. 기물파손은 별 게 아니지만 살인은 심각해져. 옳지. 그래 내 말을 듣는 거야. 그래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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