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정석]미디어산업, 세계와 경쟁을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미디어관계법을 둘러싼 논의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략 평가의 논점은 ‘선진미디어 환경 정립에 미흡’ ‘특정 정치세력에 유리할 수 있는 규제에 대한 질타’ ‘처리 과정의 비민주성과 후진성의 지적’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미디어 규제의 틀이 변화해야 할 필요성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그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품격 있게 처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앞으로 부작용을 초래할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논점 사이의 위계가 다르다. 반드시 서로 배타적인 논점이기보다는 모두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미디어법 둘러싼 소모적인 갈등

논의의 출발점은 새로운 미디어 산업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다. 미디어 산업 환경 변화의 동력은 정치, 사회적인 요인이 아닌 기술의 발전과 시장 수요의 자각이다. 정보통신기술 발전과 정보 수요에 대한 자각이 임계점에 도달해 경제성이 확보된 결과 신규, 대체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등장했고 기존 미디어 기업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미디어 시장이 독과점 구조로 인한 초과수요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미디어 초과공급의 시대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낮은 콘텐츠 생산비용, 다재다능한 콘텐츠 조작 및 재조합기술, 엄청나게 줄어든 전송비용 등은 근본적으로 다른 미디어 산업 가치 창조의 공식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향상된 콘텐츠의 다양성 및 접근성에 따른 편익은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앞으로 미디어 시장은 문화, 언어의 글로벌화와 기술의 발전이 접목돼 더욱 글로벌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는 창조적이고 선구적인 신규 사업자가 많은 가치를 선점하게 된다. 이미 구글, 애플 같은 기업은 검색 같은 핵심 요소나 콘텐츠, 온라인, 휴대용 장비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가치 창조 방식을 선점해 180조 원이 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 많은 글로벌 신규 사업자가 창조해 거두어 갈 가치 가운데 일부는 기존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 전이될 것으로 봐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미디어 산업 규제의 재편이 어떤 정치세력에 유리한지를 논쟁하는 동안 새롭게 창출될 많은 가치는 글로벌 기업으로 전이되고 한국 미디어 산업의 국제 경쟁력은 빠른 시간 내에 저하될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미디어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익성에 관한 논의가 진행될 리 만무하다. 물론 새로운 미디어 규제 틀에 대한 국민적 이해 증진과 합의는 해당 정부 부처와 정치권이 해야 할 몫이다. 특히 앞으로 미디어 산업에 대한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고 치밀한 로드맵을 준비해 가는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이 중차대하다고 판단된다.

방통위, 치밀한 로드맵 준비해야

사실 방통위의 설립 취지 자체가 정보미디어 시대에 대한 통합적, 선진적 대응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의 합의 도출 능력에 대한 국민적 비판은 새삼 논의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다만 분명한 점은 아무리 취지가 좋은 개혁안이라도 국민과의, 그리고 쌍방 간의 소통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면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미디어법은 본래 취지를 달성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형태로 ‘다운그레이드’됐고 반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정치색을 띠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제라도 대화와 소통을 통해 신규 규제의 취지를 소통하고 정치적 중립성과 공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정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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