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모종린]해외대학 진학, 체계적 지원을

  • 입력 2009년 6월 9일 02시 54분


초중고교 정보공개 사이트인 학교 알리미의 자료에 따르면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해외대학 진학의 인기가 식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올해 가장 많은 학생을 해외대학으로 보낸 고등학교는 대원외고로 총 111명이다. 한영외고가 101명, 한국외국어대부속외고가 89명으로 뒤를 이었다. 자립형사립고인 민족사관고는 68명을 해외대학으로 진학시켰다. 졸업생 대비 해외대학 진학 비율을 살펴보면 가장 적극적인 학교는 민족사관고(57.1%)였다. 한영외고(34.5%) 대원외고(25.1%) 이화외고(11.1%)도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일반고교 졸업생의 해외대학 진학도 크게 늘어났는데 올해 서울지역 고교 출신의 해외대학 진학자가 622명이었고 그중 348명이 비외고 졸업생이었다.

국내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이 해외대학을 선호하는 이유는 국내대학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국내대학이 학생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해외대학 진학을 크게 줄일 정도의 신뢰 회복은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그러므로 정부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국내 고교 졸업자의 해외대학 진학문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임의적인 수단으로 억제해서는 안 된다. 성숙한 개방국가라면 교육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해외대학 진학을 일부 개인의 선호로 치부하면서 방치해서도 안 된다. 학생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정부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야 한다.

정규과정 소홀히한 채 입시준비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학부모와 학생을 위한 해외대학 진학 상담의 제도화다. 특히 해외대학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많은 학부모는 해외대학이 수준 높은 글로벌 교육을 제공한다고 믿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미국대학 대부분은 글로벌 교육과 거리가 먼 국내 지향적인 교육 문화를 갖고 있다. 비영어권 유럽대학은 영어를 포함한 서너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다언어 인재를 배출하지만 미국대학은 아직도 영어만 할 수 있는 졸업생을 양산한다. 외국어 교육이나 글로벌 이슈에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미국 패권시대의 부정적인 유산이다.

해외대학 진학을 통해 성공적인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진학을 위한 체계적 준비도 중요하다. 현재 해외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의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유학을 준비한다. 일부 외고가 유학반을 운영하지만, 이는 방과 후 과정에 불과하다. 국내 학교가 정규과정을 통해 해외대학 진학을 지원하지 않으므로 학생은 정규과정을 소홀히 하면서 입학시험과 과외활동 중심으로 해외대학 진학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학부교육은 글쓰기, 말하기, 독립적 사고, 분석능력을 강조하는 인문교육이다. 고등학교에서 문학 역사 철학 과학 교육을 충분히 받지 않은 학생이 성공하기 어려운 교육과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어에 자신이 없는 유학생은 대학에서 영어능력이 중요한 과목이나 전공을 회피한다. 일부 학생은 학점 관리를 위해 한국어를 부전공으로 선택하고 여름학기에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대학의 과목으로 본교 필수과목을 대체하기도 한다. 미국 문화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까닭에 유학생의 교유관계는 한국 출신 학생 그룹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 학생이 해외대학에서 성공하길 정부가 진정으로 바란다면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유학 준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미국대학이 요구하는 교과과정을 운영하는 초중등학교는 외국인학교와 경제자유구역에 신설될 예정인 외국교육기관이다. 내국인 학교 중에서도 영어전용교육을 실시하는 국제중학교 국제고등학교 민족사관고 하나고 등 일부 자사고는 국제공인 교과과정 운영학교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외국인학교와 외국교육기관은 해외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내국인 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손쉽게 개편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내국인의 외국인학교 및 외국교육기관 진학을 엄격히 제한하는데 이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 이들 학교는 자연스럽게 해외대학 진학 전문학교로 발전하게 된다. 외국인학교에 대한 국적제한의 폐지는 국제 기준에 부응하는 개혁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국가 중 내국인의 외국인학교 입학을 제한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외국인도 외국인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학교보다는 해외대학에서 성공하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좋은 학교를 선호할 것이다.

영어전용학교, 유학전문학교로

정부는 고교졸업생의 해외대학 진학자료를 아무 보완조치 없이 공개했다. 대부분의 언론도 해외대학 진학의 증가를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국내 학생의 해외대학 진학은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조기유학의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떠나 해외대학 진학의 교육적 효과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에 해외대학 진학이 불가피하다면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기존의 영어전용 교육기관을 해외대학 진학 전문학교로 전환해서 해외대학 진학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안민정책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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