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노조문제와 노사문제

  • 입력 2009년 6월 1일 20시 18분


양승석 현대자동차 사장은 보름 전 “노조의 문제인데 노사 모두의 잘못이라고 얘기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는 올해 임금을 올려 달라고 하지만 임원은 임금을 10% 삭감했는데 사(使)가 무슨 문제냐”고 항변했다. 1분기(1∼3월)에 원-달러 환율이 높게 유지되는 환율 효과 덕에 겨우 적자를 면한 현대차에서 올해 임금을 4.9% 올리고 올해 당기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내놓으라는 노조 요구를 들으면 한숨이 나올 만하다.

요즘 진행 중인 현대차 노사의 임금 및 단체교섭을 보면 양 사장의 말이 금세 이해가 된다. 노조가 내놓은 25가지 요구안에는 단체협약 42조에 ‘신차종 개발 시 국내 공장에서 우선 생산한다’는 내용을 추가하자는 것도 들어있다. 북미나 유럽시장을 목표로 하는 신차도 국내 공장에서 먼저 생산해야 하는 조건이라면 해외시장 공략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노조는 단협 42조 2항에 ‘국내 공장의 생산물량을 2007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항목을 넣자는 요구도 했다. 호황이던 2007년처럼 170만 대를 생산했다가는 요즘 같은 경기침체기에 재고를 쌓아둘 곳도 부족하다. 2007년 생산 기준에 맞춰 임금을 보전해 달라는 요구이겠지만 세계를 주름잡던 미국 GM의 파산신청을 보면서도 이런 억지 주장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경영 핵심사안에 깊이 관여한 지 오래다. 현행 단협 42조는 ‘국내 생산 중인 차종의 해외생산 또는 해외이관 계획이 고용에 영향을 미칠 경우 노사공동위를 통해 심의 의결한다’고 돼 있다. 경영진이 기민하게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할 해외생산 건을 노조가 참여해 의결하니 허가권을 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조 임원과 대의원의 징계 제한 등 인사권에 영향을 미치는 단협 조항도 여럿이다.

양 사장은 억울할지 몰라도 이런 현실은 노사 합작품이다. 2003년 8월 6일 회사 측은 25일간 파업한 노조의 경영권 참여 요구를 받아들였다. 경제단체들은 “현대차 단협은 경영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산업 전반으로 파급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실제로 현대차 단협이 일부 대기업에 도입되면서 노사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업계의 재편 속에서 비약의 기회를 잡아야 하는데, 올해 노사 교섭을 보면 시원치 않다. 지난달 말 6차 교섭 때 회사 측이 요구안을 설명하려 하자 노조는 “미리 검토해 보니 고용을 위태롭게 하는 안이어서 철회를 요구한다”며 막았다. 옥신각신하던 끝에 회사 측은 노조의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 1분 동안 설명하는 수모를 겪었다. 노사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어도 교섭과 대화를 가로막는 벽은 높기만 하다.

노조의 다양한 요구의 대부분은 고용보장이 목표다. 노조는 1998년 ‘노란봉투’의 충격 때문이라고 한다. 회사 측이 해고통지서를 돌리고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사건’이 10년간 이어진 극한투쟁의 근인(根因)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해고 파동을 피하기 위해 이중삼중으로 자물통을 채울수록 회사 몸이 무거워지고 경영이 어려워져 고용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노조는 알아야 한다.

현대차 경영진은 경영권 침해 소지가 큰 단협 조항을 바로잡자는 요구를 올해도 꺼내지 못했다. 노조는 경영진을 계속 몰아붙이며 더 확실한 고용보장과 더 큰 성과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양 사장이 아무리 부인해도 현대차는 노조의 문제이면서 노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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