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91>

  • 입력 2009년 5월 12일 14시 01분


제 19장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특별시 경계 밖으로는 실시간 데이터 유출이 엄격히 통제되었다. 대뇌수사팀이 아니었다면 목소리까지 차단당했을 것이다.

"무슨 일인가, 남형사?"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글라슈트 팀원이 모두 기습을 당했습니다. 최볼테르 교수와 서사라 트레이너는 연구소 앞 산책로에서 화염총 세례를 받아 목덜미와 등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불길을 정면에서 맞았다면 목숨까지 위험했을 거라네요. 꺽다리 세렝게티와 뚱보 보르헤스의 숙소에는 같은 시각 폭탄이 날아들었습니다. 둘 다 목숨을 건지긴 했는데, 꺽다리는 갈비뼈에 금이 갔고 뚱보는 온몸에 파편이 박혀 제거수술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팀원인 노민선 박사는 행방불명입니다만…… 목격자에 따르면 낯선 사내와 새벽에 숙소에서 나갔답니다."

석범이 옆자리의 민선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노민선은 무사해."

"네?"

"노민선과 함께 나간 낯선 사내가 바로 나거든."

민선만 급습을 당한 것이 아니라, 글라슈트 팀원 전체가 공격을 받은 것이다. 자연인 그룹의 계획된 범행이 아닌지 더욱 의심스러웠다. 지금으로선 글라슈트 팀원을 감시하고 공격할 이유가 있는 집단은 그들뿐이다. 미리 감시하고 미행했다면, 지난밤의 습격은 '경고'일 것이다. 글라슈트가 '배틀원 2049'에 계속 출전한다면 팀원들의 목숨을 노릴 지도 모른다.

"노 박사랑 대체 어딜 가신 겁니까? 보안청 정보에 의하면 노 박사의 차가 특별시 경계를 벗어난 것으로 나왔습니다. 혹시 동승하셨습니까?"

"그래, 지금 돌아가는 중이지."

앨리스가 석범의 말을 반복하며 비꼬았다.

"'그래, 지금 돌아가는 중이지!' 미치겠습니다, 정말."

느낌이 이상했다. 글라슈트 팀원 외에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 것인가. 혹시……?

"이번엔 학생입니다. 열아홉 살, 고등학교 졸업반 박보배. 범인이 또 뇌를 가져갔습니다. 피해자를 미행하는 범인의 모습이 위성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빨리 특별시 안으로 들어와야 이 흉측한 녀석의 실루엣을 볼 건데요."

"실루엣? 얼굴이 나온 건 아니고?"

"그게 인공비가 내린 데다 워낙 멀리서 잡았고 또 모자를 눈썹까지 내려 쓰고 마스크로 입을 가려서, 확대와 보정을 해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실루엣이든 뭐든, 사건 현장이 담겼어?"

지구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을 통해 특별시를 촬영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인공위성의 수가 많아지자, 특별시연합의 우주청 대표들은 협약을 맺었다. 위성과 위성 간 네트워크를 통해 각 특별시들의 우범지역과 보호지역을 24시간 촬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매일매일 촬영되는 특별시에 대한 정보를 모두 축적하는 것은 어리석고 값비싼 일이다. 특이사항이 없는 위성사진은 촬영과 동시에 삭제되었고,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만 우주청 인공지능의 판단 하에 보관되었다. 범인이 위성카메라에 잡혔다는 것은 곧 나중에 다시 살필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우리한테 그런 행운이 올 리 있겠습니까? 범인이 아니라 피해자가 문제였습니다. 범인 쪽은 덤으로 걸려든 꼴이고요."

"범인이 덤이라고? 무슨 소리야?"

"특별시로 들어오시면 직접 보십시오. 낯익은 곳일 겁니다. 준비해 두겠어요."

"낯이 익다니?"

"……."

답이 없었다.

59분 23초 후, 특별시 경계로 들어가자마자, 석범은 앨리스가 준비한 동영상을 불러냈다.

"아!"

민선이 먼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풍광은 석범뿐만 아니라 민선에게도 익숙했던 것이다.

방문종이 '노윤상 앵거 클리닉'에서 나와서 하늘을 한 차례 올려다본 후 침을 찍 뱉는다. 불량기 가득한 고등학생을 지나쳤던 카메라 앵글이 다시 돌아온다. 문종이 마주오던 여고생 박보배의 손목을 틀어쥔 것이다. 보배의 등 뒤로 '앵거 클리닉' 길 건너에 자리 잡은 '눈부신 안과' 간판이 보인다.

보배가 한 차례 허리를 숙이며 팔을 흔든다.

-놔!

자막이 깔린다. 보배의 입모양을 인공위성이 읽은 것이다.

문종은 보배의 손목을 꺾으며 무릎으로 허벅지를 올려 친다. 보배가 도끼질을 당한 나무처럼 기우뚱 쓰러진다. 치켜든 보배의 눈엔 두려움이 가득하다.

-누구야 너? 나 알아?

문종이 혀끝을 둥글게 접어 침을 찍 뱉는다. 다시 자막.

-지금부터 알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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