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나영일]국궁, 지켜야할 소중한 문화유산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문화재청은 지난해 7월 7일 서울 정릉에 위치한 국궁장(백운정)을 철거했다. 조선 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왕릉 원형 복원 차원에서 철거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남산의 국궁장(석호정)에 일반 공원의 매점이나 지하상가처럼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적용하여 올해부터 대한궁도협회나 석호정과 전혀 상관없는 특정인을 임대계약자로 선정했다. 문화재 관리와 자연보호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행정당국의 논리를 이해하기 힘들다.

1995년 문화재관리국은 세계자연유산 등재 후보로 설악산 국립공원을 유네스코에 등록하려 했으나 야생동물이 별로 살지 않는 동물 생태계 미흡과 주민 반발을 이유로 신청을 철회한 적이 있다. 동물이 살지 않는 자연은 살아 숨쉬는 공간이 아니라 황폐함 그 자체다. 문화유산도 역시 그렇다.

국궁은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수천 년을 이어온 대표적인 무형문화재다. 전국에는 370여 곳의 국궁장이 있다. 서울에만 9곳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백운정이 헐리고 석호정이 놀이공원처럼 변해 전국 국궁인의 불만이 높다. 국궁장은 대부분 국공립공원의 자연녹지에 있는데 이러한 조치가 확대되면 자랑스러운 전통 무예인 국궁은 맥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장충단 뒤편 산기슭에 있던 석호정 활터는 조선시대 어영청의 분영,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곳으로 한때는 1만4000여 명의 한량이 모였던 과거시험장이었고 조선시대 실학파의 대표적 문인이었던 박제가 같은 시인이 모여 활을 쏘고 시를 짓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일제 탄압에도 민족의 정기를 지키기 위하여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열린 1928년 제1회 전조선궁술대회에서 종합 1위를 한 국궁 강팀이었고 일제 말기에 국궁이 폐쇄될 때까지 우리의 얼을 지킨 민족의 도량이었다. 석호정은 한국 양궁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올림픽을 휩쓰는 한국 양궁은 석호정에서 활을 쏘던 석봉근 씨에 의해 시작됐다.

역사성과 지역성, 정통성을 지닌 국궁처럼 문화유산으로 각광받아야 마땅할 전통무예가 외면 받고 올바로 계승되지 못한 게 우리의 실정이다. 이런 전통무예계의 현실을 늦게나마 인식해 ‘전통무예진흥법’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뒤 제정 공포됐고 3월 29일자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무예를 진흥해야 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무예 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규정하는 법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궁을 홀대하는 조치는 반드시 개선되고 수정돼야 한다.

문화유산은 유형이건 무형이건 우리의 소중한 보배이고 자산이다. 우리 겨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든 민족 문화의 정수이다.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고 찾아서 가꾸는 일은 나라 사랑의 근본이며 겨레 사랑의 바탕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영일 서울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