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임금 삭감’ 전화 받고 기뻐한 삼성 임원

  • 입력 2009년 1월 22일 02시 55분


“이 와중에 살아남았다” 안도

美 현지 직원들도 야근 자청

“○○○ 상무님. 인사팀입니다.”

“(잔뜩 긴장한 표정)…….”

“비상경영체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임원 임금의 20%를 삭감키로 했습니다. 21일 지급되는 1월 월급부터 반영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활짝 웃으며)아, 예. 잘 알겠습니다.”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16일)와 부사장급 이하 임원 승진 인사(19일)를 앞둔 15일경.

삼성 계열사의 K 상무는 연봉 삭감 통보 전화를 받고 너무 기뻤다고 합니다. “임금 깎는다는 소식이 그렇게 달콤하게 들린 적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이상한 사람이라고요? 아닙니다. ‘나는 이번에 살아남는 모양이구나’라는 안도감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사팀의 전화가 퇴직 통보용이었다면 “K 상무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몇몇 임원은 “이런 전화를 ‘사약(賜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알려주더군요.

생존을 위한 대대적 조직 축소와 세대교체를 단행한 이번 인사에서 삼성그룹의 전체 임원(약 1600명) 중 몇 명이 이 ‘사약’을 받아야 했는지 삼성 측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삼성 안팎에서는 ‘최소 300명’이란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사약’은 내리는 사람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지요. 삼성의 한 고위임원은 “예전에는 ‘그룹 2인자’였던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이 퇴직 대상 CEO들에게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그 ‘악역’을 맡은 것 같다고 이 임원은 귀띔했습니다.

대기업 임원을 흔히 ‘별’이라고 하는데요. 삼성 임원은 ‘별 중의 별’이라고 불립니다. 재계 서열 1위 그룹답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삼성의 요즘 화두는 단연 ‘생존’입니다. 임원뿐만 아니라 말단 사원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른바 ‘칼퇴근’이 몸에 밴 북미법인의 미국인 직원들조차도 야근을 자청하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생존의 절박함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한국의 국가대표급 기업 중 하나인 삼성의 살아남기 몸부림이 지금의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드는 결실로 이어지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부형권 산업부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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