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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2월 3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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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악법저지 비상국민행동’은 29일 “이명박 정부가 의회 쿠데타를 통해 독재국가의 합법적 근거를 마련하려” 한다며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언론관계법 통과를 막겠다며 총파업과 거리투쟁에 나선 전국언론노조는 ‘MB정권 퇴진’을 외친다. 인간사슬을 엮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민주당도 온몸으로 ‘일당독재’를 규탄한다. 오고가는 말의 험악함만 보면 우리 사회가 수십 년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독주에 반발하는 이들은 독재의 출현에 파시즘의 재현까지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자유가 훼손되며 경제가 파국을 맞을 내년에는 대대적인 민중폭동의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에만 인플레이션이 있는 건 아니다. 경우에 따라 독설이나 강조법도 필요하지만 절제가 따라야 한다. 쾌락체감의 법칙처럼 언어도 독한 표현을 쓸수록 효과가 줄기 때문이다. 극렬한 언사가 사실에 맞지 않을 때 그것은 악담이 되고 선동으로 전락한다.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악담과 선동이 오히려 민주정치에 해악을 끼친다는 교훈이다.
민주정치에 해악 끼치는 악담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과연 독재정권인가? 실용정부가 파시즘의 길로 치닫고 있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많은 논자들처럼 나도 이 정권의 무능과 독선, 리더십과 철학의 부재, 공공성 결여 등에 대해 계속 비판해 왔다. 개선의 전망이 안 보여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은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인 호질기의(護疾忌醫·병이 있는데도 의사의 치료를 꺼림)에서 훌륭히 요약된다. ‘문제가 있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의 충고도 싫어한다’는 뜻으로 이명박 정부의 질주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잘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독주는 곧 독재이며 파시즘인가? 독재의 사전적 정의는 ‘1인에게 정치권력이 집중되어 헌법과 민주제도를 무시하는 전제적 지배를 강행하는 정치’다. 파시즘은 ‘국수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반공주의적인 포퓰리즘에 근거한 1인 전제통치’를 지칭한다. 표준적 정의에 비추어 보아 이명박 정부를 독재나 파시즘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이 대통령이 자유선거로 당선되었으며 헌법제도에 입각해 통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대자들은 독재나 파시즘이 매우 다의적이며 또 이 표현을 비유적으로 사용했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비판이 악담으로 전락해 선동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을 정확히 써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위임민주주의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과연 심각하다.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지도자가 대운하처럼 민의(民意)에 반하는 정책을 강행하려 하거나, 막강한 대통령이 정당을 거수기로 만들면서 입법부와 사법부를 압도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는 정치구조와 대통령제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전의 민주정부들과 대통령 때도 경험했던 한국 민주주의의 후진적 공통문제인 것이다. 물론 이런 설명은 이 정부의 계속되는 헛발질에 대한 정당화가 아니다. 자유롭게 선출된 모든 민주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성공해야만 하는 정치적 책임윤리를 갖기 때문이다.
‘속도전’ 대신 설득과 타협을
다시 말하거니와, 이명박 정부는 헌법이 정한 자유민주 질서에 근거해 출범했다. 자유민주주의의 형식인 법, 제도와 절차는 많은 경우 민주정(民主政)의 내용까지 결정한다. 그러나 집권 이후 이명박 정부는 법과 제도를 넘어 기관장을 교체했고 역사학계의 의견수렴 과정 없이 역사교과서를 수정했다. 공영성의 화신을 자처하는 MBC의 주장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정부 여당은 충분한 토론과 조정을 거친 언론관계법 등의 처리를 바라는 여론을 무시한 채 폭주하려 한다.
역사에 비약은 없으며 민주주의도 한 걸음씩 발전한다. 정치는 불도저가 땅을 파헤치는 것처럼 진군하는 게 아니다. 새해 기축년은 소의 해다. ‘속도전’으로 치달은 쇠고기 협상이 재앙을 불렀던 것을 이 정부는 잊었는가. 상대를 설득하고 반대자들과 타협하면서 소처럼 대범하게 가는 게 민주정부의 길이다.
윤평중 객원논설위원·한신대 교수·사회철학
pjyoon5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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