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모래 위의 집, 반석 위의 집

  • 입력 2008년 10월 22일 03시 00분


1990년대 후반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 열풍이 세계를 휩쓸었다. 인터넷 등 정보화에 힘입어 경제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주장이었다. 발상지인 미국은 물론 기사가 깊이 있고 정확하다는 평을 듣는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조차 관련 시리즈를 장기 연재하면서 열광했다. 한국 역시 비슷한 분위기였다.

기업 실적이 시원찮아도 닷컴이라는 말만 붙으면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도저히 말도 안 되는 가격이 “구경제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며 정당화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편승해 일부 벤처기업인과 정치인이 장난도 쳤다. 하지만 2000년대 초 닷컴 거품이 무너지면서 ‘신경제의 환상(幻想)’은 철저히 깨졌다.

인간의 경제적 투기와 탐욕은 자주 상식을 벗어난 거품을 불러왔고 붕괴로 이어졌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무모한 착각이 만들어낸 첫 사건인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거품을 시작으로 18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 회사 거품과 영국의 남해(South Sea)회사 거품, 1929년 미국발 세계 대공황이 모두 그랬다.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로 경제사(經濟史)에 남을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묻지마 투기’가 초래한 재앙이었다. 실물경제를 보조해야 할 금융의 비중을 과잉 강조한 금융 자본주의는 고삐 없는 폭주(暴走)를 불렀다. 주식 채권 외환 부동산 등 각종 자산은 물론 부채까지 증권화(Securitization)하고 다시 2차, 3차의 파생상품이 미로(迷路)처럼 얽히면서 누구도 리스크(위험)의 규모를 알 수 없게 됐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을 덮친 총체적 불안은 첨단 금융기법이라는 말장난의 파탄이었다. ‘가지 않는 길’의 시인(詩人) 로버트 프로스트는 “빚이 아무리 묘한 재간을 부린다 하더라도 자신이 낸 손실을 물어내지 않고는 못 배긴다”고 했던가.

그동안 한국의 일부 지식인은 세계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월가의 논리를 금과옥조로 여겼다. 심지어 금융 자본주의의 사생아인 헤지펀드가 SK나 KT&G 등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때 은근히 이를 환영했다. 단기성 해외 투기자본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경제 국수주의나 재벌 편들기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공교롭게 우파에도 좌파에도 이런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만약 헤지펀드의 경영권 탈취 시도가 성공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지구촌이 너나 할 것 없이 큰 고통을 겪는 지금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토종 제조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글로벌 금융 불안이 진정된 뒤 국가 간 경쟁을 헤쳐 나갈 1차적 원동력은 결국 제조업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세계시장에서 어깨를 겨룰 수 있고 위기대처 능력을 갖춘 기업과 브랜드는 한국의 희망이다. ‘제조업은 영원하다’라는 마키노 노보루 전 미쓰비시종합연구소장의 통찰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경에는 ‘모래 위의 집’과 ‘반석 위의 집’의 비유가 나온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닥치면 무너지지만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 제조업의 토대를 튼튼히 하면서 지나친 욕심이 부를 화(禍)를 경계하는 것, 이것이 우리 경제를 반석 위의 집으로 만드는 해법이다.

권순활 산업부장 shk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