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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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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들어 연기하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시속 150km로 달리던 차가 사고가 난 데 비유될 수 있다. 그런데 겨우 시작한 도로 닦기를 사고 때문에 연기 내지 포기하자는 주장은 성급하다. 국내 금융산업은 시속 30km로 달리다가 이제 70km로 가보려는 참이다.
도로는 일단 반듯하게 잘 닦되 규정속도를 지키게 하고 교통경찰을 잘 배치하면 사고는 예방된다. 자본시장통합법은 150km로 달리자는 법이 아니다. 30∼40km는 너무 느리니 70∼80km 정도 가보자는 시도이다. 과거 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를 외쳤지만 금융산업 육성은 미흡했다. 금산 분리와 사금고화 논리를 반복하는 가운데 금융산업 육성은 지연됐고 제대로 된 자본이 금융업에 진출하는 것이 상당 부분 늦춰졌다.
현 정부는 금산 분리를 완전히 없애자는 게 아니고 부작용을 의식하여 점진적으로 조심스럽게 풀어가려고 한다. 이런 정부안에 대해 해묵은 재벌 사금고화 논리부터 들이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금산 분리론의 핵심은 사금고화 논리이다. 이는 금융과 산업의 ‘동시 파산론’과 감독당국의 ‘방조론’에 근거하고 있다. 대기업에 은행업 진출을 허용할 시 은행 소유 대기업은 이를 사금고화하여 고객 돈과 자기 돈을 함부로 투자함으로써 결국 동시에 파산하고, 이 과정에서 실력도 없고 시원찮은 감독당국은 이를 감지도, 제재도 못한 채 동시파산을 방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적으로 지적할 점은 은행법상 자산운용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신 한도나 주식 보유 한도가 있으며 대주주가 개인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금지한다. 파산 시 마지막으로 사고를 치지 않겠느냐는 이른바 ‘배고픈 늑대 가설’에 대해서도 금융위는 상당한 수준의 대응방안을 마련해 놓았다. 은행별 리스크 관리 상시 모니터링은 물론 대주주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 임점검사까지 가능하다.
최근 은행업에 대한 관심은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어쨌건 은행을 소유할 능력이 있는 기업이면 직접금융시장을 통해 얼마든지 자금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고 은행도 이 정도 기업이 대출을 요구한다면 얼마든지 대출해 준다. 따라서 이들이 은행업에 진출한다면 남아도는 자본을 금융산업에 투자하여 회사를 좋게 운영해 이익을 내자는 차원이지 계열사에 일방적으로 자금을 대출하여 자금을 빼돌리고 은행과 기업이 동시 파산한다는 식의 가정은 문제가 있다.
최근 금산 분리를 철저하게 지킨 미국이 금융위기를 당한 것을 보면 위기와 금산 분리를 연결시키는 주장은 무리이다. 오히려 위기 국면에서 튼튼한 산업자본이 어려움을 당한 은행이나 투자은행의 주주로서 신규자본을 투입해주었다면 일단 위기를 넘기면서 새로운 흐름을 기대할 수 있었을 수 있다.
위기의 다양한 측면을 무시한 채 논의 자체를 연기하자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이번에 제시된 방안은 첫걸음이다. 도로를 닦고 좋은 차가 다니도록 하며 감시를 잘하되 더욱 좋은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 속도계와 경찰이 잘 배치된 반듯한 금융의 도로 위에 좋은 차가 사고 없이 속도를 지키며 신나게 달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