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9월 11일 02시 5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1일 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사임의사를 밝히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남긴 말이 묘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기자의 질문에 다분히 ‘감정’이 실린 이 답변은 이날 후쿠다 총리가 남긴 최후의 말이기도 했다.
현직 총리의 돌연한 사임에 일본 정가는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후쿠다 총리의 퇴임은 자민당 붕괴의 서곡’이란 말이 나돈다. “이번에야말로 정권교체가 이뤄질지 모른다”는 귓속말도 오간다.
일본인들은 만 1년 사이에 두 명의 총리가 자리를 내던진 무책임성을 성토하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국정현안을 마무리하려는 노력도 없이 불쑥 사퇴서를 던진 그의 모습이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서도 ‘국정책임’을 거론하며 버티다가 9월 국회 도중 돌연 사퇴해 조롱거리가 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각제 국가인 일본에서는 집권 여당의 수반이자 국정 최고책임자인 총리의 선출 못지않게 사퇴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된다. 권력을 잡는 것보다 ‘물러날 시기와 방법’을 알기가 더 어렵다는 ‘사퇴의 미학’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후쿠다 총리의 퇴진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가 강조한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시각’은 권력을 향한 오르막길에는 거추장스러운 ‘짐’일 수 있다. 열정을 식혀버리고 상식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러설 때를 결정할 때는 꼭 필요한 자질인 듯하다.
후쿠다 총리까지 전후(戰後) 일본에는 29명의 총리가 있었다.
이 중 깔끔한 퇴장 사례로 꼽히는 총리는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이다. 언론인 출신인 그는 1956년 12월 우여곡절 끝에 총리직에 올랐지만, 집권 두 달 만에 폐렴으로 쓰러져 한 달 이상 입원하게 되자 “예산심의에 총리가 불참하는 것은 국민에게 죄송한 일이다. 내 정치적 양심에 따르겠다”며 물러났다. 그가 언론인 시절 정치인들에게 혹독하게 강조했던 원칙을 스스로에게 적용한 것이기도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오히려 여운을 남긴 사례다. 구조개혁으로 5년 5개월의 집권 기간 내내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2005년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에 압승을 안겨주고도 이듬해 물러남으로써 ‘완전 연소한 총리’로 일본인의 기억에 남았다. 이들은 자기 객관화에 성공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아름답지 못한 퇴진 사례로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를 들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총리직을 수행하며 전후 일본의 틀을 만든 공로자지만, 7년 2개월간 집권하며 권력에 끝없는 미련을 보이다가 사퇴를 요구하는 포위망이 좁혀들자 1954년 12월 각의실 의자를 박차고 자택으로 돌아가 버렸다. 측근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여론이 뭐람”이었다.
‘아름다운 퇴진’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이나 ‘모르겠다’식의 무책임은 곤란하다는 것. 이는 일본 총리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 권력자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크고 작은 자리를 놓고 사퇴를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다. 사퇴를 하라는 쪽이건, 하지 않겠다는 쪽이건 다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 일본에서의 ‘사퇴의 미학’이 참고가 될지 모르겠다. 특히 ‘자기 객관화’는 사퇴와 관련한 처신에 도움이 될 듯하다.
그나저나 9·22 총재선거와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라는 중대한 정치 일정을 앞둔 일본 자민당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하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