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종엽]시청률 경쟁에 멍드는 올림픽 스타

  • 입력 2008년 8월 29일 02시 58분


27일 오전 9시 반 KBS2와 SBS TV의 아침 토크쇼에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베이징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 이용대 선수와 부모가 KBS2 ‘남희석 최은경의 여유만만’과 SBS ‘이재룡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동시에 나온 것이다. 두 프로그램은 이 선수가 금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우승 직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윙크 세리머니 등을 다뤄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송이 나가자 시청자들은 “2개 채널에서 동시에 이용대 특집을 하고 있다. 방송사들의 경쟁이 볼썽사나워 채널을 돌렸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주변에서 이용대 선수의 겹치기 출연을 비난하는 이도 있다”는 글도 프로그램 게시판에 올라왔다.

이 선수의 소속사인 삼성전기는 28일 ‘이용대 선수 과열경쟁 방송 출연에 관한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 전후 과정을 해명했다. 이 선수가 SBS에 먼저 출연하기로 약속해 KBS2는 이틀 뒤 방송하기로 양해를 구했는데, KBS가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다.

삼성전기는 이날 이 선수의 부모를 비롯해 김중수 감독 등이 TV 방송을 본 뒤에야 동시 방송 사실을 알게 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며 이 선수와 가족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 KBS에 항의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이 선수 측은 또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것이 방송의 일면”이라는 말에 더욱 실망스럽다고 했다.

이 선수뿐 아니라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낸 다른 선수들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섭외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휴대전화의 착신을 정지시킨 한 금메달리스트는 “방송사에서 출연 요청 전화가 많이 왔지만 운동에 집중하려고 대부분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청자들도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순진한 선수들을 이용하지 말라” “과거 잦은 TV 출연과 잇단 스캔들로 선수 생활을 망친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KBS는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이용대 선수에게 사과하라”는 등 여러 글을 방송사 게시판에 올리고 있다.

평소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는 운동선수들이 올림픽을 계기로 조명을 받는 것은 부정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용대 선수처럼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방송사들의 과당 경쟁에 휘말릴 경우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과 감독 등이 한꺼번에 큰 오해를 받는다. 이처럼 출연자를 배려하지 않는 방송사라면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초대할 자격이 없다.

조종엽 문화부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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