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월드컵 4강의 추억’서 헤매는 한국축구

  • 입력 2008년 8월 16일 02시 59분


‘축구장에 물을 채워라. 우리 (박)태환이가 수영해야 한다.’ ‘축구장을 핸드볼장으로 바꿔라.’ ‘겨울엔 축구장에 물을 얼려라. 우리 (김)연아가 스케이트 타야 한다.’…

한국 축구가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축구 D조에서 1승 1무 1패로 8강에 진출하지 못하자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팬들은 한국올림픽축구대표팀이 대한축구협회란 거대 조직의 든든한 우산 아래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호사’를 누리면서도 형편없는 플레이를 한 것에 화가 나 있다. 대부분의 선수는 프로에서 수억 원의 연봉을 받고 스포츠용품업체의 개별 후원까지 받고 있다. 반면 박태환(단국대)이 올림픽 수영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수영은 비인기 종목의 대명사. ‘우생순’ 핸드볼은 경기장이 없어 지방을 전전하며 힘겹게 올림픽에 나갔다. 그래서 팬들은 비인기 종목의 선전에 갈채를 보냈다.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 축구는 제 몫은 했다. 이탈리아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위, 카메룬은 15위, 온두라스는 61위다. 53위인 한국이 카메룬과 1-1로 비기고 이탈리아에 0-3 완패, 그리고 온두라스에 유일하게 1승을 한 것은 제 실력이었던 셈이다.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 때 딱 한번 ‘4강 신화’를 쓴 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이번에도 8강에 오르지 못했다. 그것이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그렇다고 8강 탈락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팬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한 비인기종목 선수들과 달리 ‘호강’하면서도 형편없는 경기를 한 축구선수들의 정신력 차이를 발견했다.

카메룬 이탈리아는 힘든 상대였다고 해도 주눅 들지 않고 거침없이 최선을 다하는 ‘고추장 축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실망한 것이다.

한 원로 축구인은 “빨리 ‘월드컵 4강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축구협회는 언제나 현실과 동떨어진 ‘4강 행정’을 펼치고, 선수들은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4강 실력’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6 독일 월드컵 실패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실패한 이유다.

한국 축구는 현실을 직시해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년 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며 후회할 것이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