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소비자 행동’ 분야 권위 조지프 누네스 美 USC 교수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3분


최훈석 기자
최훈석 기자
“고객의 감정적 욕구에 귀를 기울여라”

《동아일보는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 스쿨)과 함께 세계 최고의 경영 석학들의 릴레이 인터뷰 및 대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소비자 행동 및 고객 충성도 분야의 권위자인 조지프 누네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교수를 만났습니다. 서울대는 글로벌 MBA 과정을 육성하기 위해 세계적 석학 21명을 초청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인터뷰나 대담을 통해 이들의 첨단 경영기법과 이론, 통찰 등을 소개합니다. 또 누네스 교수의 서울대 강의 내용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3호(7월 15일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대 MBA 스쿨 및 동아일보와 함께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 펼치는 지식의 향연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기업들은 소비자 행동 조사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고객의 감정적 욕구를 제대로 파악해 고객의 충성심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무형자산 투자에 인색한 한국 기업들이 할 일입니다.”

마케팅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손꼽히는 누네스 교수가 한국 기업에 던진 메시지다. 서울대 글로벌 MBA 과정에서 강의하기 위해 2주간 내한한 누네스 교수는 “뛰어난 마케팅 역량을 가진 업체들은 제품의 성능이 아니라 고객이 이 제품을 쓰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를 집중 홍보한다”고 강조했다.

○ 매장 바닥에 타일 대신 카펫 사용한 스타벅스

―소비자 행동 연구가 마케팅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진국에서는 음식, 옷, 가재도구 등 생활필수품이 넘쳐납니다. 소비자의 기본 욕구는 이미 충족된 상태지만 이후 소비자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브랜딩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고객의 감정적 욕구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고객이 상품을 구입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이 브랜드를 사용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조사해야 합니다.

기술적 측면에서 애플의 아이폰은 한국의 휴대전화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독특한 디자인과 브랜드의 상징성이 소비자의 감정적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이 아이폰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베트남의 월평균 소득을 감안할 때 아이폰은 엄청난 사치품에 속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이폰을 꼭 소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고객의 감정적 욕구를 마케팅에 이용할 때는 사람들의 ‘동료(buddy) 의식’을 자극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인그룹(in-group·자기와 공통의 코드를 가진 집단) 지향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멤버십이라는 구심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칠 경우 이에 동조하는 소비자들은 무섭게 뭉치면서 기타 브랜드를 배격할 정도로 충성심을 드러냅니다.”

―성공적인 소비자 행동 연구를 통해 기업의 성공을 일궈낸 사례를 소개해 주십시오.

“스타벅스는 고객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굉장히 잘 이해하는 회사입니다. 광고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하루 3000만 명의 고객을 끌어들인다는 것만 봐도 스타벅스의 우수성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최근 슬럼프를 겪고 있지만 하워드 슐츠 창업자의 귀환 후 다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증거가 바닥재의 변화입니다.

스타벅스는 한때 매장의 바닥 자재로 타일을 즐겨 썼습니다. 청소와 관리가 쉽고 카펫보다 비용도 쌌기 때문이죠. 하지만 고객들이 스타벅스 매장에서 느끼기를 원했던 것은 내 방, 내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듯한 편안함과 안락함이었습니다. 타일 바닥에서는 그런 느낌을 갖기 어렵습니다. 결국 스타벅스는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청소 및 유지 비용이 비싼 카펫을 선택했죠.

맥도널드도 한때 정크푸드의 대명사라는 오명 때문에 상당히 고전했습니다. 따라서 맥도널드는 건강 친화적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사과를 넣은 메뉴들을 선보였습니다. 맥도널드는 이제 미국에서 사과를 가장 많이 구입하는 회사입니다. 소비자 행동 연구는 결국 어떻게 소비자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느냐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 제네시스 출시 때 현대자동차 브랜드 고수는 아쉬워

―어떻게 하면 고객 충성도를 확보할 수 있을까요. 또 한국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 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브랜딩 전략에서는 아직 미흡한 면이 있습니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 미국 고급차 시장을 겨냥한 제네시스를 출시하면서 현대 브랜드를 고수한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도요타와 렉서스, 혼다와 아큐라, 닛산과 인피니티처럼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고급차를 내놓으면서 다른 브랜드와 판매망을 사용했습니다. 완전히 다른 회사처럼 보이게 만든 거죠.

한국에서는 현대차 브랜드가 최고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네시스는 연인과 근사한 레스토랑에 갈 때,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차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구성과 품질이 아무리 좋다 해도 지금 현대차가 가진 이미지는 고객이 원하는 이런 가치를 충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990년대 말 BMW는 미국 내에서 2만 달러(약 2000만 원) 이하의 중저가 자동차를 내놨는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BMW가 주는 근사한 이미지가 저가 자동차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런 맥락에서 삼성전자가 저가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한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신규 시장을 공략할 때는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와 맞는 방향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 자동차 업체처럼 아예 다른 브랜드를 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 해외 소비자의 특징을 파악 못했던 글로벌 기업의 실수들

―해외 소비자의 욕구를 잘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나라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잘 팔기 위해서는 소비자 개인뿐 아니라 특정 소비자 집단의 특징도 잘 파악해야 합니다. 하지만 뛰어난 글로벌 기업도 실수를 하곤 합니다.

P&G가 이탈리아 가정용품 시장에 진출했던 초기의 일화입니다. 이탈리아 주부들은 일주일에 서너 번 화장실과 부엌을 청소합니다. 반면 미국 주부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청소합니다. P&G는 자국 소비자의 특성에 맞춰 청소하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간편하고 효율적인 청소도구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대실패였죠. 청소를 자주 안 하는 것을 게으른 태도라고 여기는 이탈리아 주부들이 이런 제품을 구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펩시콜라도 한때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고전했습니다. 펩시는 자판기 판매를 시작하면서 연한 파란색 자판기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몇몇 동남아 국가에서는 연한 파란색이 죽음을 상징합니다. 파리의 유로디즈니도 개장 초 프랑스 소비자의 특성을 무시하고 테마파크 내 와인 판매 및 애완견 동행을 금지했습니다.

이런 거대 기업들도 외국 문화와 현지인의 욕구를 잘 이해하지 못해 자주 실수를 저지릅니다. 다만 이들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이를 만회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 기업은 아시아 시장을 잘 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베트남에 진출하는 대부분의 외국 기업은 남부 경제 중심지 호찌민부터 공략합니다.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서양 문화를 접해 왔으며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가품의 경우 행정수도 하노이부터 공략해야 합니다. 베트남을 움직이는 엘리트는 하노이에 몰려 있기 때문에 이들을 먼저 공략한 후 일반 대중으로의 확장을 시도해야 합니다.

태국 통신회사인 ‘트루(True)’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했을 때도 현지 소비자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트루는 다른 회사를 이용하던 고객이 트루로 올 경우 기존 전화번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는데, 인도네시아 고객들은 기존 번호를 고수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국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조지프 누네스 교수는…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제학과 언론학을 전공했다. 시카고대에서 마케팅과 행동 결정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남캘리포니아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소비자 행동, 사치재, 가격 결정의 전략적 이슈, 신상품 개발, 이문화(異文化·cross-cultural) 마케팅 등이며 최근에는 소비자 충성도(loyalty)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 식품회사 네슬레, 제약회사 애봇 랩 등의 자문을 담당했으며 저널 오브 마케팅(Journal of Marketing), 저널 오브 컨슈머 리서치(Journal of Consumer Research),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등 최고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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