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성호]制憲 60주년, 촛불을 만나다

  • 입력 2008년 7월 3일 03시 00분


2008년 7월 3일. 4·9총선으로 탄생한 18대 국회가 석 달 가까이 원구성도 못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백범 김구 선생 59주기 추모식에 전직 국회의장이 현 국회를 대표해 참석하는 촌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가오는 7월 17일 60주년 제헌절 기념식 석상에선 또 누가 주최 측인 국회를 대표할 건지 궁금해진다. 임기 중 개헌을 벼르고 있다는 18대 국회의 오늘이 이렇다.

1948년 7월 3일. 광복 3년을 휘젓던 깃발들에 지친 촛불들은 한마음으로 5·10총선에 표를 던졌다. 그 마음은 오롯한 독립 민주국가의 국민이 되고픈 염원이었다. 그 단심(丹心)을 받잡은 초대 제헌국회는 일사천리로 원구성과 의장단 선출을 마치고, 6월 1일 드디어 대한민국 건국헌법 제정에 착수한다. 그로부터 달포가 지난 60년 전 오늘에는 7월 1일 시작된 헌법안 제2독회(讀會)가 한창이었다.

돌아보면 아쉬움도 남는 건국헌법이다. 그악했던 일제 35년과 불쑥 찾아온 광복은 제헌에 필요한 인적 자원도 지적 유산도 남겨놓지 않았다. 강요된 분단은 헌법규범과 정치현실 사이에 구조화된 질곡을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이 건국헌법의 돌이킬 수 없는 결함을 예증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오히려 그 모든 난관을 넘어 독립 민주국가를 만들어 낸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감사할 이유가 될 뿐이다.

건국헌법 정신 부정된 적 없어

총 9차에 걸친 헌법 개정도 그렇다. 우리 개헌사에 헌법수난사의 성격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 어떤 개헌도 건국헌법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적은 없었다. 오늘의 관점에서는 왜곡이었을지언정, 지나간 개헌들은 건국헌법을 세대마다의 현실 속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한 나름대로의 결과였다. 각 개헌에 대한 시시비비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촛불세대가 하나일 수 있는 것은 바로 건국헌법 전문(前文)에 나오는 ‘우리들 대한국민’ 덕분이다.

촛불의 그림자 사이로 다시 개헌론이 일렁인다. 현행 1987년 헌법의 흠결을 2008년의 촛불로 조명하며 전례 없는 설득력을 갖고 돌아왔다. 하지만 변하는 것이 있으면 불변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입헌민주주의는 가르친다. 아무리 숨 가쁜 개헌논의라 해도 변해서는 안 될 건국헌법 정신에 대한 현재적 의미 부여를 비껴갈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진보가 일각에서나마 대한민국 건국헌법을 다시 보기 시작한 건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건국’을 ‘분단’의 원흉으로만 치부하는 구태의연을 벗어 던지고 헌법 그 자체를 읽어 본 것 같아 반갑다. 거기에서 강렬한 통제경제의 원칙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문제의식까지도 일단은 환영한다. 그 진보적 헌법해석이 옳고 그름은 다음 문제다. ‘남한진보’가 드디어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은 것 같아, 바로 그 길 위에서 ‘대한민국 보수’와 만날 수도 있을 거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그에 반해 이번 개헌논의를 선도하는 보수에게는 불안한 구석이 없지 않다. 항상 대한민국을 앞세우는 보수, 그 일각의 개헌론이 과연 건국헌법을 꼼꼼히 읽어보았는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그렇지 않고서야 급진적인 신(新)자유주의 개헌을 어찌 그리 쉽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방임적 자유시장주의가 건국헌법에 반영된 삼균주의(三均主義)의 이상과 부합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시대정신의 제시와 그에 따른 건국헌법의 창조적 재해석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런 속 깊은 고뇌 없이 세계와 시장과 실용만을 되뇔 때, ‘대한민국’은 가고 ‘보수’만 남는다는 우려, ‘딴 나라 보수’라는 비아냥거림을 외면하기 힘들어진다.

걱정스러운 신자유주의 개헌론

건국헌법은 우리 모두를 하나 되게 하는 힘이다. 그 의미에 대한 이해는 다를 수 있고, 또 다른 게 정상이다. 관건은 결론이 아니라 대화에 있다. 개헌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을 때 ‘우리들’의 진보와 보수가 카오스의 밑바닥에서 건져 올릴 희망의 이름은 건국헌법이다. 바로 깃발로부터 촛불을 지킬 수 있는 ‘대한국민’의 희망이다.

돌아오는 제헌절, 우리 모두 광장에서 만나자. 서로 부둥켜안고 등 두드리며 얘기하자. 지난 60년 어려웠지만 우리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고.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다고. 그리고 다시 산성과 토성으로 헤어지기 전 각자 속으로 불러보자.

대한민국 만세. ‘우리들 대한국민’ 만세.

김성호 연세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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