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다케나카 헤이조의 조언

  • 입력 2008년 6월 28일 02시 58분


1980년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공기업 민영화에 적극 나섰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공기업 지원을 끊고 자본시장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민영화는 2000년대 들어 주춤해졌지만 일본은 오히려 전성기를 맞았다. 일본엔 메이지(明治)시대 중기인 1880년대에 벌써 민영화를 뒷받침하는 ‘민영화 정신’이 뿌리내렸다. ‘관업(官業)이라도 민간이 이윤을 올려 국익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면 민간에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민영화 정신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1982∼1987년 재임)의 ‘작은 정부 지향’을 거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2001∼2006년 재임)의 ‘관(官)에서 민(民)으로’로 이어졌다.

▷고이즈미 정권은 최악의 경제를 물려받았다.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에 허우적대는 일본에서 세계공황이 시작될 것이란 암울한 관측까지 나왔다. 이때 ‘괴짜총리’ 고이즈미는 ‘개혁’을 외치며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를 재정경제상으로 임명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장관 임명장을 주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이제부터 엄청난 싸움이 시작되겠죠”라고 말했다. 싸움은 우정(郵政)민영화였다. 개혁을 총지휘했던 다케나카 장관은 이 싸움뿐 아니라 공무원 감축, 규제개혁 같은 정부개조(改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성공 비결은 뭘까. 총리와 함께 정부에서 물러나 게이오대로 돌아간 다케나카 교수는 요즘 “개혁에는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빠른 결단과 집행으로 한꺼번에 추진해야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 개혁에 공무원 사회의 반발은 있기 마련이므로 국민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지지를 얻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개혁을 선창했지만 개혁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도 전에 브레이크가 걸린 형국이다. 이 대통령은 그제 “한국은 개혁하는 과정에서 환영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통령 국제자문단’ 멤버인 다케나카 교수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정책에는 순서가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민영화의 전(全) 과정을 국민 앞에 공개했다.” 비방(秘方)은 아니지만 정책 추진의 순서가 중요하다는 그의 경험담을 이 정부는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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