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상묵]심상치 않은 거시경제의 흐름

  • 입력 2008년 6월 19일 02시 57분


거시경제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곡물 가격도 유례없이 높은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는 생활비와 생산원가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다른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으로 전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멸종된 것으로 알았던 인플레이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우려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조만간 임금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임금과 물가 상승 간의 악순환이 재연될 소지도 있다.

남미와 동남아 국가에서는 이미 두 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는 나라가 속속 나타나고 있고 선진국에서도 물가가 상승기조로 돌아서고 있다는 조짐이 뚜렷하다. 더욱이 이런 현상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세계경제가 둔화 국면으로 진입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어 성장의 둔화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징후마저 나타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정책 당국을 진퇴양난의 처지로 몰아넣는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확장정책을 취하자니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정책을 취하자니 경기 침체가 악화되기 때문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앞에서 정책 당국은 개별적인 증세에 대해서는 병명도 알고 처방도 알지만 다른 증세에 대한 부작용 때문에 어떤 약도 쓸 수 없는 환자를 앞에 놓고 자연적으로 병이 치유되기만을 기다리는 의사의 궁박한 처지가 된다.

中-印 성장이 원자재 빨아들여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유가와 곡물가의 급등과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기조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최근의 유가와 곡물가 급등에 이라크전쟁과 같은 개별 산유국의 사정이나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특정 지역에서의 가뭄과 같은 일시적인 요인이 한몫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으로는 기조적인 수급체계의 변화에서 초래되고 있는 측면이 크다.

기조적인 수급체계의 변화를 야기하고 있는 핵심은 중국과 인도의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다. 중국과 인도라는 거대한 경제가 잠에서 깨어나 본격적인 산업화 단계에 진입하면서 자원의 블랙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종 원자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원자재 수요 중 상당 부분은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나타나는 수요다. 이전에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던 많은 공산품을 이들 두 나라가 생산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수요다. 이러한 수요는 외형상으로는 새로운 수요로 보이나 실상은 다른 나라의 수요가 이동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수요가 원자재의 수급체계를 기조적으로 흔드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들 두 나라가 세계의 공장으로서 수행하는 기능 그 자체는 물가 안정화 기능을 수행해 왔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낮은 가격으로 생산한 공산품을 세계시장에 수출하면서 세계적으로 공산품 가격 상승이 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만 해도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중국발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견해마저 있었다.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면 실질임금과 실질금리가 높아지고 가격체계의 시그널 기능이 교란되면서 경제에 심각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중국발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고 적정선에서 물가를 상승시킬 것인지를 고민하는 중앙은행 당국자도 있었다.

중국과 인도가 원자재에 대한 수급체계를 기조적으로 변화시키고 범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야기하고 있는 원천은 이들 두 경제의 자체적 소비수요 증가에 있다. 합쳐서 인구가 24억 명인 이들 두 경제의 국민소득 향상은 원자재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를 폭증시키고 있다.

경제 중장기계획 새로 짜야

이는 경제 성장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혁신적인 고효율 대체에너지의 실용화나 새로운 농업혁명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 추세는 중장기적으로도 불가피할 것이다.

이와 같은 거시경제의 흐름은 이미 세계 각국에서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불안정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발생하고 있는 각종 불안 요인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경제 운용의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상묵 삼성생명 상무·경제학박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