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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6월 12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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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하려면 정부의 조기 경보, 위기관리, 미래 예측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에서 시작된 촛불시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정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광우병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한미 정상회담 직전 쫓기듯이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타결했다. 조기 경보에 실패한 것이다.
정부는 쇠고기 수입으로 타격을 입게 될 한우 농가 지원대책만 잘 제시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 듯하다.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 불안이 광우병 우려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짐작만 했더라도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등에 졸속 합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촛불시위가 시작된 뒤에도 정부는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계속 밀려가고 있다.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자 정부 일각에서는 선생님들을 동원해 학생들을 설득하면 시위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안이하게 판단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문 시위꾼들이 가담해 시위를 주도하고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전문 시위꾼과 자발적 참가자들을 갈라놓으면 촛불집회가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아직도 ‘분리’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인터넷을 통해 터무니없는 광우병 괴담이 퍼져나갈 때도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쇠고기 수입을 옹호하거나 촛불시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녀사냥식 인신공격이 인터넷에 난무하고 있지만 정부는 손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불법시위에 대한 대응도 오락가락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은 폭력시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선언하고 일부 과격 시위자를 연행했다. 하지만 촛불시위대의 항의에 밀려 대부분 풀어줬다. 이렇게 되다 보니 공권력이 사실상 무력화됐고 촛불을 든 몇 사람이 도로를 점거해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경찰 버스가 불타고 초등학생이 전경에게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쇠몽둥이 세례가 쏟아지는데도 경찰의 대응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위기관리 기능이 총체적 부실에 빠지는 바람에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정확한 정보가 없다 보니 대책을 내놓는 데 실기(失機)를 계속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초기 촛불시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청와대 참모와 내각 전면 쇄신까지 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의 미래 예측 기능은 기대 난망 상태다. 취임 100일이 갓 지난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20%대까지 떨어졌는데도 마땅한 반전 카드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현 위기 국면을 돌파하려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올바른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관은 국가정보원이다. 수천 명이 해마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쓰고 있는 국정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정부의 조기 경보, 위기관리, 미래 예측 기능도 되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대통령의 민심 오독(誤讀)과 실기를 막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김차수 정치부장 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