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손학규 대표의 속 보이는 ‘계엄’ 발언

  • 입력 2008년 5월 30일 23시 04분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장관 고시(告示) 발표가 강행되는 것을 보면서 계엄이 선포됐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고시가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계엄 선포에 비유하다니 그가 과연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정치지도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의 발언을 신호탄으로 민주당은 18대 국회 벽두부터 장외투쟁에 나서고 있다.

정부 여당을 견제하는 것이 야당의 본분이라지만 이번 발언은 선(線)을 넘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국민대책회의’가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내각 총사퇴를 주장한 것도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치의 한 모습이지만 손 대표는 명색이 제1야당의 대표 아닌가. 손 대표가 자신의 불안정한 당내 기반을 과격발언과 장외투쟁으로 만회할 생각인지 모르지만 지금의 언행은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선명야당’이나 ‘장외투쟁’ 같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일부 불가피했던 극한적 방식으로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상식으로 판단할 때 미국과 한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먹이려고 하겠는가. 적어도 대통령을 꿈꾸는 지도자와 정권을 되찾으려는 정당으로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정파적 이익에 사로잡혀 극단적 카드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공당의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민주당은 18대 국회의 문을 정상적으로 여는 데 협조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 뒤 쇠고기 문제를 국회 내에서 재론하면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여당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재협상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여전히 믿는다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는가.

되도록 빨리 비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성사시킨 노무현 정부 시절의 여당으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다. 쇠고기 문제를 국정 흔들기에 활용하다가는 호된 역풍(逆風)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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