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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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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살리기’를 내걸고 1년간 11편의 연극을 릴레이로 공연하는 기획인 ‘연극열전2’의 흥행 성적은 눈부시다. 지금까지 4작품을 공연했는데 2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첫 작품인 ‘서툰 사람들’의 경우 제작비를 제하고도 2억3000만 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이 정도면 대학로에서 연극 네댓 편을 만들 수 있는 액수다. 제작비만 건져도 다행이라는 요즘 연극계에서 소극장 연극이 석 달 공연으로 이 정도 순익을 낸 것은 기록적이라고 할 만하다. 두 번째 작품 ‘늙은 도둑 이야기’ 역시 티켓 판매액만 벌써 5억 원을 넘겼다. 3월에 막을 내렸어야 할 이 연극은 관객이 몰리자 연말까지 장기 공연에 돌입하기로 했다.
‘연극열전2’의 흥행을 바라보는 연극계 시선은 따갑다. 대학로의 한 연극기획자는 “한때 상업적인 흥행연극이라는 이유로 연극계에서 ‘왕따’ 취급당하던 ‘라이어’도 요즘 ‘연극열전’ 덕분에 욕을 안 먹는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다.
‘연극열전’에 대한 비난은 한마디로 “연극을 살리겠다던 연극열전이 스타 캐스팅을 이용해 그나마 있던 대학로 관객을 ‘싹쓸이’한다”는 거다. “유명 스타가 나오는 연극에 맛 들린 관객 눈에 앞으로 평범한 연극배우가 나오는 공연이 들어오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가뜩이나 없는 관객을 뺏긴 연극계의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신포도’ 심리도 살짝 엿보인다.
배우 조재현 씨가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덕분에 ‘연극열전’은 평소 무대에서 만나기 힘든 TV와 영화 스타의 릴레이 출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황정민 한채영 고수 유지태 추상미 나문희 이순재 씨 등이 이미 무대에 섰거나 설 예정이다.
스타를 내세워 관객을 끌어들였다는 것만으로 비판할 수는 없다. 정극 아닌 흥행연극으로 돈을 번 것에 대해 당당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최근 공연예매사이트 인터파크가 ‘연극열전2’를 관람한 관객 12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2%가 “연극열전이 생애 첫 연극”이라고 대답했다. 앞으로 연극을 다시 보겠느냐는 질문에는 5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연극열전’이 새로운 연극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럼 스타가 없는 정극은 희망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난 주말 막을 내린 서울 예술의 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공연인 ‘야끼니꾸 드래곤’을 주목할 만하다.
재일동포 작가 정의신 씨가 쓰고 연출한 이 연극은 어쩌면 기획자 눈으로 보면 흥행이 안 될 요소를 고루 갖췄다. 2시간 40분이나 되는 긴 공연 시간, 출연 배우의 절반은 일본 배우인 데다 일본어 자막이 공연의 절반을 차지하는 한일 합작극, 게다가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칙칙한’ 주제까지.
그러나 ‘스타’라는 당의정 없이 삶의 이야기를 정면 승부한 이 연극은 예상과 달리 일반 관객들에게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일주일 남짓한 공연이었지만 92%에 이르는 객석 점유율을 보였고 전석 매진된 마지막 공연일엔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좋은 작품은 관객이 알아본다는 소박한 진리를 일깨워준 셈이다.
강수진 문화부 차장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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