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이야기]맨유, 챔스리그 결승 후반에 허덕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8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박지성은 잊혀진 선수였다. 박지성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뛴 아시아 첫 선수일 것으로 믿고 밤을 지새운 여러분도 사실상 기만당했다.

나도 책임을 느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은 환상적인 프로다. 그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퍼거슨은 박지성을 실망시켰다. 퍼거슨은 결코 인종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편견도 없다.

하지만 퍼거슨은 박지성에게 기대감을 갖게 한 측면은 있다. 그는 박지성이 언론 앞에서 ‘나는 단지 유니폼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맨체스터에 왔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라고 허락했다. 그러나 경기 1시간 전 박지성은 엔트리에서 제외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퍼거슨은 선수 기용에 관해서는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다. 그는 우승하기 위해 선수들을 선택한다.

우승한 뒤 선수들은 박지성에게 트로피를 들라고 했다. 박지성은 8강과 4강에서 혼신을 다해 우승에 기여했다. 박지성은 팀의 일원이다. 그는 양손으로 트로피를 들었고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카를로스 테베스는 박지성을 친동생처럼 바라봤고 파트리스 에브라는 박지성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테베스는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에브라는 세네갈 출신 프랑스 선수다. 박지성은 한국인이다. 인종과 국적은 큰 의미가 없었다.

박지성은 어떤 선수보다 그라운드를 많이 누빈다. 퍼거슨은 박지성이 맨체스터에 에너지를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승리를 부르는 사나이다. 지난번 칼럼에 썼듯이 박지성은 마지막 11경기 중 단 한 번 빠졌고 그때 팀은 졌다. 무릎 부상 전부터 박지성은 22경기에 선발로 뛰어 21경기에서 승리했고 단 한 경기만 졌다.

그렇다면 경험 부족일까. 오언 하그리브스는 7년 전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퍼거슨은 PSV 에인트호번 시절인 2005년 AC 밀란과의 4강전에서 박지성의 활약상을 보고 영입했다. 경험 부족도 아니다.

퍼거슨은 첼시의 오른쪽 수비에 약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왼쪽 공격수로 투입해 마이클 에시엔과 대적하게 했다. 하그리브스는 오른쪽에서 애슐리 콜이 공격라인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겼다.

이 구상은 전반엔 통했다. 그래서 호날두가 선제골을 넣었고 테베스는 두 번의 기회를 잡았다 놓쳤다. 하지만 후반에는 첼시가 맨체스터를 압도했다. 만일 그때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앞세운 박지성이 뛰었다면 나니나 라이언 긱스보다 나았을 것이다.

퍼거슨은 이제 약 석 달 뒤에나 박지성을 만난다. 박지성이 월드컵 예선과 올림픽에서 또 다른 꿈을 좇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신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퍼거슨은 용병술에서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박지성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지는 못했다.

어쨌든 박지성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박지성의 이유 없는 결장은 한국 사람들에겐 퍼거슨 감독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굴욕으로 느껴질 수 있다.

랍 휴스 잉글랜드 칼럼니스트 ROBHU800@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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