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종대]‘그들만의 잔치’로 가려는가

  • 입력 2008년 4월 17일 02시 55분


요즘 중국에선 반(反)서방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다.

서방의 언론 보도를 비판하는 중국 관영 언론들의 보도가 잇따르더니 최근엔 서방 언론 자체를 비난하는 노래까지 등장했다. 미국의 CNN과 영국의 BBC, 독일의 MTV 등이 티베트 사태를 왜곡 보도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중국 언론은 CNN이 티베트를 ‘국가’로 호칭하고 시위 장면을 중국 정부에 불리하게 편집해 보도했다고 주장한다. BBC는 구조요원을 중무장한 진압 병력으로 왜곡하고 MTV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네팔 경찰을 중국 경찰이라고 보도했다는 것이 중국 언론들의 지적이다.

한국에서 한때 ‘놈현스럽다’는 부정적 의미의 신조어가 유행했듯이 중국에서는 ‘CNN스럽다’는 표현이 ‘불공정하다’ ‘사람을 속이다’는 뜻의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사람 됨됨이가 너무 CNN스러워서는 안 되지(做人不能太CNN)’라는 제목의 노랫말은 울분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프랑스계 대형 유통 할인점인 카르푸를 상대로 한 불매운동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거드는 눈치다. 장위(姜瑜)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정례브리핑에서 불매 운동을 지칭해 “프랑스는 중국인들의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의사 표시를 보고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베이징(北京) 올림픽이 개막 전부터 암초에 걸려 성공적인 개최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 시작된 티베트 독립 시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상태다. 티베트 무력 진압에 항의해 독일 캐나다 등 10여 개국 지도자가 이미 올림픽 개막식 불참을 선언했다.

1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직접 출발을 선언한 올림픽 성화 봉송은 세계 곳곳에서 항의 시위와 습격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성화가 3번이나 꺼졌고 영국 미국 등에서는 곳곳에서 봉송이 저지됐다. 성화 봉송은 중국이 내세운 ‘조화의 여정(和諧之旅)’이기는커녕 반목과 갈등의 주전장이 됐다.

성화는 앞으로도 인도 호주 일본 등 여러 곳에서 적잖은 수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파룬궁(法輪功)의 시위가 예상되는 한국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다.

올림픽의 성화 봉송을 이용해 자유롭게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제대로 된 국가라면 당연히 보장해야 하는 기본적 권리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성화 봉송 자체를 봉쇄하거나 중단시킬 권리는 없다. 올림픽은 그 자체로 인류평화를 위한 세계적인 스포츠 제전이다.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 제전 땐 전쟁 중이던 병사도 무기를 내려놓고 경기에 함께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올림픽 경기는 곧잘 정치도구로 이용됐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미국과 옛 소련이 대립하면서 ‘반쪽 올림픽’으로 전락했다.

205개국 선수가 참가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베이징 올림픽이 또다시 정치도구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티베트 사태를 볼모로 베이징 올림픽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이는 13억 중국인만이 아니라 66억 세계인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성화 봉송 방해나 불참 선언을 불매운동과 같은 맞불 놓기로 확전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58년간 3번이나 대규모 독립 시위를 일으킨 티베트 등 소수민족 정책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면전에서 비판할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선비는 절대 명성을 잃지 않는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중국의 경구다. 쟁우(諍友)로서 하는 말이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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