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사양산업 ‘독점의 열매’ 마지막 생존기업이 먹는거죠”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동아일보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스쿨)과 함께 세계 최고의 경영 석학 21명과 릴레이 인터뷰를 갖습니다. 서울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컬럼비아대, 프린스턴대, 예일대, 듀크대, 뉴욕대(NYU)와 프랑스의 인시아드 등 세계적 경영대학원의 외국인 교수 21명을 각각 초빙해 한국 MBA의 지평을 넓힌다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경영학 분야 최고 석학으로 인정받는 캐시 해리건 컬럼비아대(기업전략), 우데이 카마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운영전략), D J 난다 듀크대(원가관리), 요하네스 페닝 와튼스쿨(변화전략), 이브 도즈 인시아드(기업혁신) 교수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동아일보는 7월 초까지 순차적으로 2주씩 방한해 서울대에서 강의하는 이들 석학과 심층 인터뷰를 갖고 최첨단 경영 기법과 이론, 대가의 통찰 등을 소개해드립니다. 또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한국 최초의 고품격 경영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BDR)를 통해 석학들의 강의 내용 중 핵심을 요약해서 전해드립니다. 서울대MBA스쿨 및 동아일보와 함께 세계 최고 경영 전문가들이 펼치는 지식의 향연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경영전략 석학 美컬럼비아大 캐시 해리건 교수

“사양산업(declining industry)에서도 얼마든지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기존 투자비가 아까워서 쇠락하는 산업에서 탈출을 머뭇거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점적 지위 유지, 차별화, 인수합병(M&A) 등으로 사양산업에서도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경영전략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손꼽히는 캐시 해리건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 기업에 이런 메시지를 던졌다. 서울대 글로벌 MBA 과정에서 강의하기 위해 내한한 해리건 교수는 25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사양산업이라도 업계를 평정해 마지막 생존자가 되거나 차별화로 승부하라고 조언했다.

○ 사양산업에서는 자본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중요

“경쟁 기업을 인수하든 아니면 가격을 할인하든 간에 업계를 평정해 경쟁자를 없애려면 보유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십시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기업이 얼마나 많은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양산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더라도 보유 자산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돈은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자본을 확보하면 대규모 투자와 합병이 가능하고, 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영향력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사양산업에서는 자본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본을 무기로 업계를 평정하면 그 뒤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죠. 샌드위치 포장에 쓰이는 카본리스(carbonless) 페이퍼 시장에서 이와 유사한 상황이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자영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 맨해튼의 그리니치빌리지에는 배관 제품을 파는 가게가 한 곳밖에 없었습니다. 맨해튼의 오래된 건물들을 생각해 보세요. 배관 수요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정말 잘 팔리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수한 제품 개발은 자본 확보만큼 빈번하게 나타나는 시장 지배력 확대 방법은 아니지만 충분히 효과가 있습니다. 제품뿐 아니라 고객층을 세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제품 조기 수용자)의 반대 성향을 지닌 고객들을 생각해 보죠. ‘난 변화가 싫어. 기존 상품을 쓰고 싶어’라고 하는 고객들이 꽤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노려야죠.”

○ 사업 철수 때는 ‘더 큰 바보 이론’을 구사

해리건 교수는 사양산업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BCG 매트릭스’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BCG 매트릭스는 세계적 전략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이 고안한 전략 수립 도구다. 이 도구를 통해 분석한 결과, 한 기업의 성장성과 시장점유율이 모두 낮은 것으로 나타나면 소위 ‘개(dog)’로 분류해 사업 철수를 고려해야 한다.

“25년 전에는 BCG 매트릭스가 기업 전략 수립에 유용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산업 매력도를 반영하는 지표로 단지 시장 성장률만을 고려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일차원적입니다. 경쟁 환경 변화와 신사업 및 기술 등장 등 다른 변수들의 효과를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양산업에서 철수를 결정했다면 보유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더 큰 바보 이론(bigger fool theory)’을 적절히 구사하라고 해리건 교수는 권했다.

이 이론은 투자 효과가 의심스러운 사업을 하면서도 나중에 더 멍청한 바보에게 기업을 팔 수 있기 때문에 추가 투자를 단행할 수 있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주식이나 원자재 시장이 과도하게 오를 때도 자주 쓰인다. 나보다 더 바보 같은 투자자가 내 주식을 받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한 급등장에서 투자를 계속하라는 것. 끝내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주식을 던진다는 논리다.

기술 발달과 정부 정책 및 소비자 기호 변화 등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산업이 쇠락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일까. 해리건 교수는 “기술 발달 때문이라면 수요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이때도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해 생산성 있는 자산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며 자본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핵가족화로 아기용품 수요가 줄어드는 것처럼 생활양식 변화로 인한 수요 감소는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패션 산업도 이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 M&A 노하우 있을 때 비관련 다각화 시도해야

해리건 교수는 미국 복합기업 타이코(Tyco)의 경우 관련성이 없는 여러 사업부가 있지만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며 사업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비관련 분야로의 다각화도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관련 분야로 다각화한 기업의 경우 본부에서 사업부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부정적 시너지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재벌과 같은 복합기업은 오너가 경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과도한 간섭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너는 가급적 재무 지표를 달성했느냐 여부만 따져야지 과도하게 사업 전략에 관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미국의 복합기업들은 각 기업이나 사업부가 자발적으로 전략을 수립해서 실행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재무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해리건 교수는 비관련 분야로 다각화한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M&A와 관련한 노하우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M&A 성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얼마나 싼 값에 기업을 사들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타이코의 경우 이런 점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죠. 싸게 기업을 사들이려면 자사의 재무상태를 충분하고 면밀하게 분석한 후 실제로 얼마나 돈을 지불할 수 있으며, 회사 전체적으로 투자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무엇인지를 사전에 파악해야 합니다. 물론 다각화 추진 이전에 극도로 정교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토대로 좋은 사업 아이템을 골라야 합니다.”

한국 재벌의 경우 미국 복합기업에 비해 핵심 사업과 관계없는 비관련 사업부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한 한국 대기업의 경우 전자가 주력 업종인데 화학이나 화장품 회사를 가지고 있더군요. 미국의 경우 화학 산업 자체의 쇠퇴로 유명한 화학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캐시 해리건 교수는 ▼

기업 수준 전략(corporate level stra-tegy) 분야에서 세계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캐시 해리건 교수는 경영전략의 대가 마이클 포터 교수의 지도로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쟁자 분석, 다각화 전략, 인수합병(M&A), 구조조정 등 분야에서 최고의 학문적 성과를 냈다. 특히 수직적 통합이 퇴출 장벽 및 기업 전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과 ‘전략 그룹(strategic group)’에 대한 연구, 쇠퇴 산업에 대한 분석 등을 통해 학계와 기업 실무자들에게 많은 통찰을 제시했다. 유명 기업들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풍부한 실무현장 경험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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