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무원이 ‘철밥통’이어선 안 되는 이유

  • 입력 2007년 7월 6일 23시 16분


경제부처에서 31년간 일하다 정년퇴직을 3년 앞두고 산하기관 이사로 자리를 옮긴 K 씨는 매월 125만 원의 공무원연금을 받고 있다. 지금은 50%이지만 산하기관에서 남은 기간을 채우고 나면 ‘정년퇴직’으로 간주돼 연금의 100%, 즉 월 250만 원을 받게 된다. K 씨는 그래서 노후 걱정이 별로 없다. 산하기관 이사 자리도 ‘부담은 없고, 체면은 살릴 수 있어’ 만족스럽다. 승용차도 나온다. K 씨의 부인도 “가끔 언론에서 ‘철밥통 공무원’이라고 비판하는데 솔직히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웃는다.

요즘 많은 젊은이가 이런 노후를 꿈꾸며 공무원 시험에 몰려든다. 어디 노후뿐인가. 경쟁이 치열한 민간기업에 비해 일은 적고 남는 시간은 많다. 무엇보다 신분이 보장된다. 내일 실시되는 서울시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공시족(公試族·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대이동’이 벌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7, 9급 56개 직종에 모두 1732명을 뽑는데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만 6만7000여 명이 응시한다. 총응시자는 14만4445명이나 된다. 7일과 8일 새벽 서울에 도착하는 KTX는 대부분 매진이고, 지방의 학원에서는 1박 2일짜리 상경 패키지 상품까지 동났다는 보도다.

4월의 9급 국가공무원 시험에는 18만6478명이 몰렸다. 교육업체인 웅진 패스원은 경찰 및 교사직까지 포함해 한 해 공무원 수험생이 7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신(神)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을 빼고도 그렇다.

직업의 자유는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 다만 공무원 자리가 지나치게 선호되는 사회에서는 국민 기풍으로서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이 약화되고, 민간부문의 인적 수월성(秀越性)과 활력이 퇴조할 우려가 있다. 이런 나라가 미래지향적이고 선진국 지향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공직사회도 민간부문 못지않은 경쟁사회로 변해야 한다. 기업처럼 모진 평가를 통해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지는 공무원들은 도태시키는 등 ‘철밥통’을 깨야 공직사회의 대(對)국민 기여도가 높아지고, 공직과 민간부문 간의 ‘선호 불균형’도 완화할 수 있다. ‘한번 공무원은 영원한 공무원’이어서는 ‘공무원 천국’일지는 몰라도 진취적인 나라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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