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DJ의 서머스쿨

  • 입력 2007년 7월 6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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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여름정치학교(서머스쿨)를 연 지 벌써 두 달째다. 강의실은 서울 동교동 자택이고, 과목은 ‘정권 재창출론’이며, 수강생은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한명숙 김혁규 천정배 씨 등 범여권의 대선주자와 통합신당 추진자들이다. 학습효과는 강하고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DJ가 “대통합으로 단일정당을 만들거나, 안 되면 연합해서 후보라도 단일화하라”고 가르치자 이들은 곧바로 그런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손, 정 씨 등이 6인 연석회의를 열고 “단일정당에서 국민경선으로 단일후보를 뽑는다”고 합의한 게 그것이다.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전직 대통령이 무슨 아쉬움이 있어서 이처럼 대선에 집착하는 것일까. DJ 측이 내세우는 명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햇볕정책을 지키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민주개혁세력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발전을 위해서는 DJ의 뜻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범여권이 계속 집권해야 한다는 것이다. 뒤집으면 정권이 한나라당에 넘어가면 평화도, 민주도 깨진다는 얘기다.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한나라당이 5일 햇볕정책보다 더 유연한 새 대북(對北)정책을 내놓음으로써 드러났지만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 포용정책은 DJ와 그 추종자들이 아니더라도 계속 추진될 게 분명하다. 한나라당의 새로운 정책은 ‘햇볕’을 넘어서 거의 ‘땡볕’에 가깝다. ‘상호주의’의 족쇄를 풀었을 뿐 아니라 경제지원의 전제조건이던 북핵 폐기 요구도 완화했다. 서울-평양 경제대표부 설치, 북 방송·신문 전면 개방, 연간 3만 명 규모의 북 산업연수생 초청 등은 가히 파격적이다.

한나라당이 ‘땡볕정책’ 내는 판에

대선을 의식한 포퓰리즘 냄새가 나긴 하지만 기조는 ‘포용’이다. 이명박, 박근혜 씨도 동의했다고 하니 누가 정권을 잡아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우파(右派) 보수정당이어서 좀 더 자신 있게 밀어붙일 수 있다. 좌파(左派)의 친북정책은 종종 국민을 불안에 빠뜨리지만 우파는 그렇지 않다. “닉슨만이 중국에 갈 수 있었다”는 말도 있다. 1970년대 초 닉슨이 보수적인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어서 국민의 오해를 사지 않고 미국과 공산 중국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이로써 “햇볕정책을 지키기 위해” 대선에 개입하겠다는 DJ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한나라당이 ‘햇볕’보다 더한 것도 하겠다는데 왜 햇볕정책의 안위를 걱정하는가.

두 번째 명분인 ‘민주 발전’도 그렇다. DJ는 수강생들에게 민주 발전의 요체는 양당제(兩黨制)이므로 어떻게든 양당제로 가라고 주문한다. “국민이 여야 1 대 1 대결을 바라고 있고,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양당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요컨대 지리멸렬한 범여권을 위해 정치판을 양당제로 재편해 주려고 자신이 나섰다는 얘기다.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양당제를 깬 것은 범여권이다. 국민이 3년 전 4·15 총선을 통해 양당제를 만들어 줬는데도 이를 버렸다. 다시 양당제로 돌려놓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국민, 곧 정치소비자에게 달렸다. DJ가 계속 나서면 정치시장만 왜곡된다.

DJ의 서머스쿨을 보면 작전세력을 동원한 주가(株價) 끌어올리기가 연상된다. 자산가치도 실적도 바닥인 기업(범여권)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DJ가 총대를 메고, 그 뒤를 고만고만한 수강생들이 ‘대통합’이라 적은 초라한 깃발을 들고 따라가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실적이 나쁜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이 시장논리다. 그대로 놓아두면 주식을 사고파는 소비자만 손해 본다. 정치시장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을 터이다.

‘주가조작’ 말고 정치市場떠나야

범여권 사람들은 내년 4월 총선 걱정을 많이 한다. “설령 대권을 넘겨주더라도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 의석비율이 최소한 60 대 40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DJ의 표현처럼 “(한나라당이) 혼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격”이 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국민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여소야대(與小野大)라도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우리 국민이다. 국민이 선택할 문제이지 DJ가 나서고 안 나서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은 정치시장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범여권이 통렬한 반성과 함께 스스로 난관을 헤치고 나오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도 의미 있는 정치발전의 한 단계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서머스쿨의 셔터를 내릴 때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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