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OK 大邱’

  • 입력 2007년 2월 23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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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육상경기는 1896년 5월 관립영어학교 운동회 때 치러졌다. 영국인 교사 허치슨의 지도로 학생들이 달리기 높이뛰기 멀리뛰기 경기를 벌였다. 요즘과는 달리 각 종목에는 한자로 된 명칭이 붙었다. 100m 경주는 ‘연자학비(燕子學飛)’로 불렸다. 제비가 하늘을 날아가듯 달리는 운동이라는 뜻이었다. 높이뛰기는 ‘비어섬랑(飛魚閃浪)’이었다. 물고기가 물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서양인들이 국내에 들여온 근대 스포츠는 주로 학교를 통해 보급됐다. 체육 수업이나 학교 운동회 때 규칙을 배우고 실기를 익혔던 것이다. 근대식 학교가 세워진 도시에서 체육 활동이 활발했던 배경이다. 대구도 계성학교 신명학교 등 개화기에 세워진 학교를 비롯해 교육기관이 많아 육상이 활발했던 곳이다. ‘한국의 쿠베르탱’으로 불리던 우리 올림픽운동의 선구자 이상백도 대구 출신이다.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단 임원으로 참가해 손기정의 마라톤 금메달 획득을 지원했다.

▷대구가 육상의 메카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육상경기의 꽃인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나선 것이다. 오늘까지 현지 실사를 벌이는 국제육상경기연맹 조사단을 맞아 대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제 조사단이 오가는 길목엔 수많은 시민이 나와 ‘OK 대구’를 연호했다. 이들의 진심어린 환대에는 대회 유치에 따른 경제효과를 떠나 가라앉은 지역 분위기를 일신하려는 열망이 담겨 있다.

▷육상은 스포츠의 뿌리다. 인간이 지닌 신체능력 가운데 달리기처럼 가장 근본적인 것을 놓고 겨루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육상을 배운 우리가 110여 년 만에 ‘꿈의 제전’을 여는 주체가 된다면 세계 체육사에 크게 의미 있는 일이다. 3월 27일에 있을 개최지 선정은 어느 후보 도시가 투표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주민의 유치 열망과 개최의 필연성 면에서 대구는 훨씬 앞서 있다. 실사는 대구를 끝으로 마무리되지만 본격적인 유치 활동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거국적 지원을 통해 유치를 꼭 성사시켰으면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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