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세계 1등과 경쟁하자

  • 입력 2007년 2월 21일 02시 58분


“얘야, 공부 잘하는 친구와 사귀어라.”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가 자녀에게 많이 하는 얘기다. 친구와 놀러 다니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우등생에게 자극받아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게 부모의 속마음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직설적으로 딸에게 우등생과 경쟁하라고 말했다. 그것도 미국만이 아니라 인도 중국 등 세계의 우등생을 상대로 말이다. 그는 ‘세계는 평평하다’란 저서에서 미국 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좋은 일자리를 인도 중국의 우등생에게 뺏기고 햄버거나 굽게 될 것’이라며 스트레스를 팍팍 줬다.

국내 기업들은 이런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세계 우등생과 경쟁해서 실력을 키웠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국내시장에서 우물 안 경쟁을 하던 시절 그들은 세계무대에 명함도 내밀지 못했었다. 그들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 계기는 세계 최우등생인 일본 소니와 미국 GE 등과 경쟁하면서부터다. 지금 삼성과 LG의 많은 제품이 품목별 세계 1등이다.

다른 나라 기업인들이 이런 비법을 모를 리 없다.

본보가 1월 1일부터 연재하고 있는 ‘세계 최강 미니기업을 가다’를 보자. 보청기 시장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덴마크 오티콘사는 직원이 700명이다. 경쟁상대는 직원 47만 명의 지멘스라는 골리앗이다. 오티콘의 닐스 야콥센 사장은 본보 기자에게 “거대한 적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무기’(신제품)가 필요하기 때문에 혁신은 생존의 필수조건이었다”고 강조했다.

1899년 호주의 시골 마을에서 시작한 베가치즈는 1990년대 중반부터 글로벌 경쟁을 선언했다. 모리스 반 린 해외영업담당 이사는 “미국 유럽 기업과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1990년대 후반부터 설비를 자동화하고 품질기준을 제약업체 수준으로 올렸다”고 말했다. 2005년 호주와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자 베가치즈는 미국 일류 치즈업체와 어깨를 겨룰 수 있었다.

외국에선 중소기업들조차 세계 최우등생들과 겨뤄 실력을 키우는데 그 나라 대기업이야 오죽하겠나.

본보 ‘해외경영특집’(2월부터 매주 수요일 발행)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의 올해 경영전략은 ‘무림고수 찾아 나서기’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뛰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배우자”고 말했다.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선생처럼 세계 최고수를 찾아가 정면승부를 벌이라는 주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기술과 문화, 사람 등 모든 면에서 글로벌 역량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질적으로 글로벌 톱3, 양적으로 글로벌 빅3에 들겠다고 했다. 세계 최고와 싸우겠다는 다짐이다.

지난주에 만난 조현식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우리가 국내 기업만을 상대로 경쟁했다면 벌써 문 닫았을 것이다. 브리지스톤과 미쉐린 등 세계 1, 2위 타이어업체들과 사귀며 경쟁했기 때문에 국내 1위를 유지하고 해외시장도 개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 부사장은 스위스 출장길에서 멋있는 스키장을 보고도 스키 한번 못 탔다고 한다. 전교 1등이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자녀가 세계 1등이 되길 원하는 학부모라면 이런 충고를 하는 게 더 효과적일 듯싶다.

“얘야, 글로벌기업 사장님들을 본받아라.”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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