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논평가 대통령비서실장’

  • 입력 2006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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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어제 ‘비서실 직원에 보내는 글’을 통해 선진국임을 자임(自任)할 수 없는 이유를 ‘언론정치’ ‘정치언론’에서 찾았다. 그는 작년 연말 비서실 직원과의 대화에서는 “선진국이 아니라는 증거를 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의 ‘논평가’ 겸업도 어울리지 않지만, 말이 오락가락해 괜찮은 논평가가 되기는 틀렸다.

▷그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문제를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에 비유하며 “여성 호남 비주류 진보에 대한 비토”라고 비난했다. 임기 3년 남은 헌법재판관의 사표를 받아 6년짜리 헌재소장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빚어진 헌법과 법률 무시, 편법, 코드 인사, 일 처리 미숙은 망각했던 모양이다. 자신들의 실수를 감추고 소수파 차별로 몰아붙이기는 졸렬한 둔사이고 비열한 편 가르기다.

▷그는 정치인이 신문기자와 저녁자리에서 만난 것을 정언(政言) 유착 관계라고 했다. 이 실장은 기자 생활하면서 저녁 먹을 때마다 정치인과 유착하다가 청와대에 들어갔는가. 특정 후보 선거캠프를 거쳐 두 대통령 밑에서 돌아가며 청와대 요직을 한 것이야말로 표본적인 정언 유착에 해당한다. 전효숙 씨를 거론하며 여성 비토 운운한 사람이 여성 언론인이 당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는 ‘만취해 기억이 없는 국회의원의 손바닥만 나무랐다’ ‘유착은 짝사랑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망발을 했다. 해당 국회의원은 여기자들의 고발로 법의 단죄를 받았다. 이 실장은 지금이라도 여성과 여기자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한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언론’ 때문이 아니라 정부 실패와 ‘언론 정책’ 때문이다. 친여(親與) 신문에 국민 세금을 지원하고, 친여 신문을 배달해 주는 ‘관영보급소’를 만들고, 대통령비서실장이 비판 신문을 공격하는 나라는 절대로 선진국 대접을 못 받는다. 대통령비서실 직원들이 꼭대기부터 행정관까지 2류 정치평론이나 일삼아서야 언제 다시 경제가 살아나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겠는가.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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