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낙동강엔 龍이 그리 많나

  • 입력 2006년 12월 10일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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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는 7일 한 인터넷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혼란과 위기는 영웅과 지도자의 몫을 크게 만든다”면서 “한강 전선이 아니라 낙동강 전선에서 용이 나온다”고 말했다. ‘여권(與圈)의 지지가 낮은 건 인물이 없기 때문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응답하면서 “역사의 해안가에서 지금 날개 달고 날 채비하는 사람이 많다. 바람이 없기 때문에 뜨지 못하는 거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뜻이며 어떤 의도를 담은 말인가. 안 씨는 현 정권 탄생의 주역으로 노 대통령을 떠받드는 여권 내 ‘친노(親盧)세력’의 상징적 인물이다. 불법 대선자금 수수로 1년간 복역한 뒤 2004년 12월 만기 출소했고, 올해 광복절 특사로 사면 복권됐다. 그의 말은 친노세력은 물론이고 노 대통령의 의중까지 읽게 한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안 씨의 얘기는 ‘지금은 여권에서 한나라당 대선주자들과 대적할 만한 인물이 안 보이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나타날 것’이라는 장담 같다. 즉흥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의도된 발언으로 들린다. 그는 지난해 여름 노 대통령이 제안했던 대연정(大聯政)에 대해 깊이 연구했고, 지금은 여야를 넘나들며 내년 대선 ‘틀 짓기’ 구상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은 노 대통령이 8월 초 언급한 ‘외부 선장론(船長論)’과도 맥이 통한다.

‘낙동강 용’이란 표현은 복합적인 의미로 읽힌다. 현재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달리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영남권이기 때문에 이들과 대적하려면 여권에서도 영남권 후보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또 그동안 한강(국회)을 중심으로 익히 알려진 인물이 아닌, 다크호스가 등장할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현재 여권에서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친노그룹이 결국에는 대선의 최종 승자를 만들어 낼 것이란 ‘자신감 세일’도 의도한 듯하다.

요컨대 안 씨의 발언은 바람이 자연히 불지 않으면 ‘선풍기 바람’이라도 일으켜 친노세력의 인물로 여권의 대선후보를 띄우겠다는 뜻 아닌가. 열린우리당을 깨고 범여권의 통합신당을 만들겠다면서 노 대통령을 배제하려는 이른바 통합신당파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이자 경고인 셈이다. 386 운동권 출신다운 호기(豪氣)다.

친노세력의 움직임은 이미 바빠졌다. ‘당 지도력 훼손과 조직윤리의 실종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당원들을 압박한 4일의 대통령 서신이 궐기 신호라면, 안 씨의 발언은 행동강령쯤 돼 보인다. 이들은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퇴진을 거론하면서 10일 전국당원대회까지 열어 세를 과시했다.

통합신당파와 친노세력의 싸움은 당의 진로를 결정할 내년 2월 전당대회에서 승부가 가려지겠지만 그 이후가 더 볼만할 것이다. 서로가 함께 갈지, 완전히 헤어질지, 헤어졌다 다시 합칠지 알 수 없다.

집안싸움이니 국민은 구경이나 하면 되는 건가. 한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더니 다시 패가 갈려 서로 내 살 궁리에 몰두하는 걸 보면서 ‘국민을 살릴 궁리부터 해 달라’고 주문한다면 실없는 소리가 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정권 창출에 한번 성공했다고 마치 정치판, 선거판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양 자신하는 안 씨의 태도는 아무래도 교만하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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