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탄핵 역풍’ 떠올리며 ‘下野역풍’ 기대하나

  • 입력 2006년 11월 28일 22시 56분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상황에 따라서는 임기 중에 하야(下野)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관측을 낳았다. 이런 발언은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는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부연에도 불구하고 적절하지 못하다. 국정 파탄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면서, 정치권과 국민을 향해 으름장을 놓거나 동정을 사려는 것으로 들릴 만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임기’ 발언은 지지도가 한 자릿수(9.9%·내일신문-한길리서치 조사)까지 추락한 데 따른 좌절감의 토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역경은 오기에 찬 민심 역주행이 자초한 결과다. 지금부터라도 순리대로 현안들을 풀어 가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런데도 또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투로 말한 것은 ‘탄핵 역풍’을 추억하며 ‘하야 역풍’을 기대하는 승부수 띄우기로 읽히기까지 한다.

대통령은 어제 “임기 동안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자면 이런저런 타협과 굴복이 필요하면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대통령이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을 철회한 것은 부당한 횡포에 굴복한 것”이라고 강조해 마치 노 대통령이 ‘힘없는 약자(弱者)’인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재작년 탄핵 사태 때처럼 동정 여론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면 이래저래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여당이 “당-정-청이 한 몸으로 갈지, 중립내각으로 갈지 12월 9일까지 결론을 내라”고 최후 통첩하듯 대통령을 압박한 것도 대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기는 어렵다. 여당도 국정 파탄의 책임을 상당 부분 나눠 져야 할 상황이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임기를 잘 마치기를 바란다”면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그만두면 헌법 절차를 따르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각종 민생법안 처리, 정책 집행, 인사 등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타협할 것은 타협해야 한다. 청와대와 여야 정당들이 서로를 물고 뜯으며 차기 대통령 취임까지 1년 3개월 동안 국력과 국운을 쇠잔(衰殘)케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공범적 대죄(大罪)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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