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경제 저런교육]저축왕 수연이는 왜 빚쟁이가 됐을까

  • 입력 2006년 11월 2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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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고객님, 대출금을 꼭 갚으실 거죠?” “뭐, 그래야죠.” “그럼 그렇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김수연 양은 16세의 ‘신용불량자’다. 그는 올여름 ‘엄마은행’이라는 끔찍한 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금을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다. 방과 후 피자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모처럼 친구들과 맛있게 나눠 먹었지만, 호기 있게 ‘질렀던’ 2만8000원은 고스란히 김 양의 빚이 되고 말았다.》

●사례

엄마은행의 홍경자(50) ‘군포 지점장(수연 양 어머니)’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독촉했지만, 도무지 갚을 방법이 없었다. 용돈은 항상 모자랐다. 게다가 지점장은 매정하게도 이자까지 꼬박꼬박 계산했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파산할 지경인데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단다.

홍 씨는 외동딸 앞에서 이렇게 항상 은행 역할을 한다.

올바른 경제 습관은 어릴 때 들여 놓아야 한다는 게 홍 씨 생각이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사고 싶은 것도 많을 김 양에게는 밤낮으로 저축을 강조하는 어머니가 미울 때도 있다. 딸한테 이자까지 챙기는 건 또 어떤가. 무시무시한 ‘마녀’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고 했다.

김 양은 초등학생 때만 해도 이름난 ‘저축 소녀’였다.

학교에서 치르는 경제 관련 시험이나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상을 휩쓸었다. 어머니를 따라 은행에 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일주일에 2000원씩 은행에 입금했다. 통장에는 부모님한테 받은 용돈, 친척이 주신 돈, 설날 세뱃돈이 꼬박꼬박 쌓였다.

그렇게 6년을 저축하니 통장에 100만 원이라는 ‘거액’이 모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돈으로 교복도 사고, 가방도 사고, 머리도 손질하고….’ 즐거운 상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연아, 할머니 댁 화장실 시설이 안 좋잖아. 그래서 형제들끼리 돈을 모아서 고치려고 하는데 네가 자랑스럽게 통장에 있는 돈 내면 안 될까?”

좋은 일에 쓰자는 어머니 말씀에 싫다고도 못하겠고, 김 양은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다.

그 후 김 양은 저축에 흥미를 잃어 버렸다. 한 달에 2만 원씩 받는 용돈을 하루에 다 쓸 때도 있었다. 자연히 엄마은행과의 사이도 안 좋아졌다. 지점장 몰래 직불카드를 만들어 쓰고, 용돈 기입장을 거짓으로 써 용돈을 타냈다. 물론 걸릴 때마다 지점장에게 불려가 호되게 회초리를 맞곤 했다.

하지만 김 양은 요즘 그런 생활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3년 전 조기 퇴직하고 택시운전을 하는 아버지, 100원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가계부를 쓰는 어머니를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는 김 양은 최근 어머니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다.

“교복 있잖아, 사 입을 필요 없으니까 얻을 곳 있으면 얻어도 돼.”

어머니는 그런 딸이 참 고맙고 미안하다.

경기 군포시에 있는 김 양의 집에는 눈에 띄는 물건이 하나 있다. 길이 2cm가 채 안 되는 몽당연필 수십 개가 담긴 유리병. 초등학생 때 김 양이 쓰던 것이란다.

“이 유리병은 내 딸이 계속 간직할 거예요.”

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이었다.

군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평가

어머니 홍경자 씨는 딸에게 경제 교육을 시키면서 몇 가지 반성할 점도 있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일에 쓴다지만 6년 동안 저축한 돈을 통째로 가져갔으니 아이가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까. 그것이 수연이의 저축하려는 의지를 꺾은 게 아닌가하고 반성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홍 씨는 2년 전 “새 출발을 하라”는 의미를 담아 딸 아이 통장에 100만 원을 입금해 줬다. 앞으로 수연이 예금통장은 수연이 스스로 쓰게 하고 싶다고 했다.

홍 씨는 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빚을 면제해 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도 후회했다. 공부는 수연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금전적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성적과 빚 탕감을 연결하는 것 자체가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홍 씨는 딸에게 여전히 훌륭한 경제 교사다.

“같은 여자인데도 제가 놀라요. 우리 엄마는 백화점에 가도 절대 충동구매를 하지 않더라고요.” 수연이의 엄마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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